서정문의 역사칼럼
안동 임청각과 이상룡
칼럼 ㅣ 서정문 칼럼니스트 ㅣ 2018년 03월 28일 (수) 15시 25분 14초 |
경상북도 안동시는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 부르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도산서원의 퇴계 이황, 하회마을의 서애 류성룡이 안동에 있다. 일본강점기에 시를 지어 민족혼을 일깨운 ‘청포도’의 시인 이육사의 고장이다.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가운데 ⅓이 안동 출신이라고 하면 믿어지는가.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곳 가운데 하나가 임청각, 석주 이상룡의 집이다. 안동 시내 중심에서 동북쪽 방향, 안동댐 가는 길로 들어서면 철길 왼편에 임청각이 있다. 일제가 99칸의 고택 마당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로를 만들어 집을 두 동강 낸 곳이다.
임청각은 보물 제182호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살림집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500년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안동 고성 이씨의 대종택이다.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의 여섯째 아들인 영산현감 이증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여기에 자리를 잡아 입향조(入鄕祖)가 되었다. 이후 이증의 셋째 아들로 중종 때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지은 별당형 정자가 바로 임청각이다.
조선시대엔 임금이 사는 대궐을 제외하고 100칸 이상의 집을 지을 수 없었다. 가장 크게 집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99칸이었다. 그렇게 99칸이었던 집은 현재 70칸만 남아 있다. 집 마당 가운데로 철길이 지나가고 있다.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입니다. 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습니다. 아흔아홉 칸 저택이었던 임청각은 지금도 반토막이 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바야흐로 임청각을 관통한 철길은 이제 영주에서부터 안동 시내를 돌아갈 계획이다. 서울 청량리를 출발하는 중앙선은 안동을 우회하여 다시 놓이고 있다. 그렇게 되면 임청각은 시간마다 기차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끊어진 혈맥도 다시 이어지지 않겠는가. 안동댐에서 흘러내린 푸른 강물이 천천히 흘러가는 모습을 정자에 앉아 유유자적하게 바라볼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았으리.
나라가 어려운 시기, 분연히 일어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분들. 그분들의 얼이 고스란히 서려 있는 정자의 문설주. 거기서 그분들의 나라사랑 마음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 서정문 칼럼니스트 ㅣ 시인, 수필가 / 정치학 박사 |
연성대 겸임교수, 전 성결대 외래강사 육군 대령 전역, 한미연합사, 국방부, 주 자유중국(대만) 대사관 연락관 근무, 연대장 시인, 수필가, <우리문학> 및 <한국수필> 등단 국제펜클럽 이사, 한국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 회원 전쟁문학상, 화랑문화상, 국방부 주관 호국문예 시 당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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