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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유배간 남자, 광해

지도에도 없는 길 2018. 10. 18. 16:26

서정문의 역사칼럼

제주로 유배 간 남자, 광해

칼럼 ㅣ 서정문 칼럼니스트 ㅣ 2018년 02월 02일 (금) 11시 52분 28초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조선 광해군 8, 천민 하선이 독살 위기에 놓인 광해의 대역을 맡아 왕 노릇을 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자신의 안위와 왕권만을 염려하던 왕 광해와 달리 정치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사람과 백성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는 잘 아는 하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임금이었다. 광해는 왕이었으나 폐위가 되고 난 다음, 더는 왕의 칭호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폐위된 후 강화도 등에 유배되었다가 마지막으로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왕이었다가 유배를 간 조선의 왕은 단종, 연산군, 광해군 단 3명으로, 이들은 모두 왕위에서 쫓겨난 후 유배당했다. 조선시대 때 유배지는 주로 섬 지역이거나 수도인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 많았다.

 

제주도 유배의 역사 가운데 왕이었던 이는 광해군뿐이다. 광해군은 인조반정(反正)으로 왕위에서 파면당했기 때문에 왕의 묘호(廟號)를 받지 못하고 ()’으로 강등(降等)되었다.

 

그는 후금(청나라)과 명나라와의 외교관계에서 중립적인 외교를 펼쳐 조선이 자주적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나라의 은혜를 배반하고 오랑캐(후금)와 화친한 는 조선의 덕목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반대했던 세력을 숙청하다가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위시키는 등 폐모살제(廢母殺弟)를 하게 되었다.

결국 능양군 이종이 반정을 일으키고, 서인세력에 의해 강제로 폐위되어 유배형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된 것이다.

 

그는 처음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었다. 이때 폐비 유씨와 폐세자, 폐세자빈이 함께했다. 그러나 세자와 세자빈은 자살하고, 장성한 아들과 며느리를 잃은 광해군의 부인 유씨도 죽게 된다. 그러다가 청나라가 조선을 완전히 복속한 이후에는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제주도에서 그의 생활 역시 어렵기 짝이 없었다. 광해군을 감시하고 끌고 다니는 별장은 자신이 상방을 차지하고, 그를 아랫방에 거처하게 하였다. 그는 나인이 자신에게 영감이라고 하며 멸시를 해도 전혀 분개하지 않고 말 한마디 없이 그 굴욕을 이겨냈다. 온갖 모욕을 당하면서도 의연한 자세를 보였고, 그렇게 견디다가 그는 164171,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하였다.




서정문 칼럼니스트 ㅣ 시인, 수필가 / 정치학 박사
연성대 겸임교수, 전 성결대 외래강사
육군 대령 전역, 한미연합사, 국방부, 주 자유중국(대만) 대사관 연락관 근무, 연대장
시인, 수필가, <우리문학> 및 <한국수필> 등단
국제펜클럽 이사, 한국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 회원
전쟁문학상, 화랑문화상, 국방부 주관 호국문예 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