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방

빈병

지도에도 없는 길 2011. 3. 22. 09:17

 

 

오래전에

저 병안 가득 향기로운 술이 담겨 있었네

마지막 한 모금 

달콤한 술의 바닥

향기로운 한 줄기 연기로

마지막 방울이 날아가기까지

오래 즐거웠을 그대의 혀

감미로움이 전신으로 펴져갈 때

병은 자꾸 허전해져 갔네

먼저 떠난 빈 병의 어깨를 끌어 안았네

서로 부딪히면서 잠시 서로의 존재를 기억했었네

비어 있는 공간의 가벼움을 덜어줄 수 있는 건

처음 던져진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었네

아침마다 햇살을 바라보는 것이었네

다시는 그런 향기로움의 시간은 없겠지만

한동안 그대가 해야할 일을 끝내고

되돌아온 그 자리

 

거기 그대가 남아

먼지 쌓여

천천히 조금씩

잊혀져가는 시간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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