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재봉틀
그 할머니를 거기 남대문에서 만났네
그 날은 햇살이 눈부셔
불을 밝히지 않아도 온 세상이 환했네
그래서 오래 손에 익은 재봉틀을 문 앞에 내어
묵은 옷감을 재봉질 하기로 했네
햇살이 참으로 눈부신 오후였지
골목을 지나온 여린 바람이 부는듯
간혹 할머니의 흰 이마에 바람스치는 소리가
재봉틀 바퀴 돌아가는 소리처럼 들렸네
아직도 기름쳐진 둥근 틈새엔
먼지 사이로 할머니의 손 냄새가 번져
재봉 바퀴는 발 놀림이 아니어도 돌아가고 있었네
네모진 발판을 따라
길게 이어진 할머니의 힘줄과
손등의 주름들이
묵은 옷감을 깁고 또 깁고 있었네
묵은 옷은 어느 덧 할머니의 손등이 되고
할머니의 이마가 되어
천천히 할머니가 기워지고 있었네
맞아 이제는 그만 깁을 때도 되었지
그날처럼 오후의 햇살이 눈부시면
시력 떨어진 할머니의 안경너머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주름같은 실밥
할머니의 시간이 바느질 되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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