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밥
정인보 표소에서 였다
다들 산수유 꽃 그늘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하는데
뒤란 작은 연못에서 물위에 둥둥 뜬 빈 연밥을 보았다
연 씨앗은 떨어져 다시 물 밑으로 가라 앉았는지
입 큰 금붕어 뱃속에서 물을 불리고 있는지 몰라도
둥둥 뜬 가벼운 삼각형이
비워 낸 몸임을 알려주었다
그리 똑똑했다는 세종조의 대학자도
여기 묻혀서 잊혀지지 않으려 고갤 기웃거리는데
저기 사진을 박아대는 사람들 뒤에서
가볍게 둥둥 떠다니며 봄 산수유 꽃을 감상하는
반쪽이 마른 연밥을 쳐다본다
나는 한참을 물흐름과 물결사이를 헤매다가
다시 정신을 차려 돌 아래 그림자를 뒤로 하고 왔는데
되돌아본 작은 연못 위에 아직 연밥
덩그렇게 집을 지고 돌아다니는구나
가도가도 돌아나가도
그 연못 가운데이지만
봄 날, 비우고 떠다니는 그 가벼움
아직 내 가슴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