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역사의 흔적

호로고루 성터를 가다

지도에도 없는 길 2015. 11. 28. 09:34

 

 

 

바람이 마음을 채워주다

 

임진강 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비린 내음으로 온다

강변에 머물던 비늘들이 내 뱉는

비릿한 조각들은 풀 숲에서 오래 삭아

물비늘이 된다

바람은 불어오다 머물면서 강의 물소리에 귀를 씻고

빈 강 가장자리를 지나는

바람의 갈기를 쓰다듬는다

 

바람이 저절로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마음으로 들어간 바람 줄기들이

뿌리만 남기고 어디론가 떠난다

 

 

엉겅퀴꽃이 피다

 

보라색 보라꽃

엉겅퀴꽃이 핀다

세상은 잠시 보라색으로 변하고

풀빛속에서 유난히 빛이난다

모여서 함께 피어나니 더욱 정겹다

강물이 흘러가는 길목을 바라보는

그 꽃 눈빛도 좋다

 

 

 

연천 고구려 3대성

임진·한탄강변의 연천 고구려 3대성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은 강원도 평강 부근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옛 한탄강을 따라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식어 만들어진 용암 지대이다. 용암은 침식을 받게 되면 수직의 기둥들이 떨어져나가 주상절리를 이루게 되는데, 임진·한탄강변에는 강의 양쪽에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높이 15~20m 이상의 수직 현무암 주상절리가 병풍처럼 발달하고 있다. 이처럼 강의 양쪽이 높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강으로 내려가 강을 건너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임진·한탄강과 소하천이 만나는 곳은 소하천의 침식작용으로 강으로 내려가 강을 건널 수 있는 지형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는데 수심이 낮아 배를 타지 않고 강을 건널 수 있는 얕은 여울목이 형성된 곳은 대규모의 군대가 이동할 시 주로 이용되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런 곳에는 강을 건너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고구려의 군사기지가 어김없이 위치하고 있다.

연천 고구려3대성인 호로고루(사적 제467), 당포성(사적 제468)과 은대리성(사적 제469)은 임진·한탄강 북쪽의 삼각형 모양의 현무암대지 위에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고구려 성들이다. 고구려의 남진이 시작되는 5세기 중반부터 고구려군이 신라와 백제 연합군에 밀려 한강지역을 빼앗기게 되는 551년 무렵 까지는 고구려군의 주요 남진 루트 상에 위치한 거점지역으로 활용되었으며 한강지역을 잃은 고구려군이 임진·한탄강을 따라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할 무렵에는 높고 견고한 성들로 축조되어 이 방어선을 관장하는 중요한 군사적 역할을 수행했던 곳들로 추정된다.

 

연천호로고루(사적 제467,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1257-1번지)

호로고루는 남한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삼각형모양의 강안 평지성으로 임진강과 소하천이 현무암 대지를 삼각형 모양으로 침식하여 만들어 놓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해 만든 고구려 성이다. 성의 남쪽과 북쪽은 동서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는 15m 높이의 자연 절벽을 그대로 성벽으로 활용하였고 진입이 가능한 동쪽 방향에는 길이 90m, 높이 10m, 40m에 이르는 견고한 성벽을 쌓았다.

호로고루가 위치한 곳의 임진강은 과거 표하, 호로하 등으로 불렸는데,삼국사기에는 호로하 부근에서 벌어진 고구려와 신라, 신라와 당나라에 대한 전투기록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임진강 하류에서 고랑포까지는 수심이 깊어 배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강을 건널 수 없으나 호로고루 부근은 배를 이용하지 않고도 임진강을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수심이 낮은 여울목이 있어 육로를 이용할 경우 평양에서 한성(현재 서울)으로 가는 가장 짧은 거리상의 요충지이다. 따라서 삼국시대에는 남쪽에서 진격하는 신라와 백제세력을 방어하기 위한 고구려의 국경방어사령부가 있었고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주변의 행정과 군사를 주관하는 장단군의 읍치가 있었으며, 조선시대 후기에도 이 지역은 호로탄이라 하여 개성으로 가는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연천호로고루 동벽의 구조와 성내부 시설물들

2006년 호로고루 2차 발굴조사 당시 현재 동측성벽의 바닥 부분에 북에서 남쪽 방향으로 진행하는 일렬의 기둥구멍들이 확인되어 고구려 남진 초기인 5세기 중엽 경에는 호로고루의 동측성벽이 목책으로 구성되어 있었음이 밝혀졌다.

서기 551년 이후 임진강을 따라 고구려의 새로운 방어선이 구축되면서 호로고루는 전면적인 토목공사를 통해 재정비되었다. 남쪽지역이 높고 북쪽지역이 낮았던 성내부는 북쪽 지역에 흙을 쌓아 다져서 편평하게 하고 성벽이 들어서게 될 곳은 높이 1m 정도 높이로 판축을 하여 성의 기초를 견고하게 다졌다. 판축해서 다진 부분의 중앙에는 폭 6m, 높이 10m의 흙둔덕을 튼튼하게 쌓고 이에 기대어 양쪽에 석축 성벽을 쌓아 올렸다. 이 성벽이 받게 되는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암반에서부터 보축성벽을 덧대어 쌓고 보축성벽을 보강하기 위해 다시 보축성벽 외부에 경사지게 흙으로 판축을 하였다. 이런 형태의 축성법은 아래의 판축부와 엄청난 무게의 석축성벽이 힘의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쉽게 붕괴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을 감안했을 대 고구려의 높은 축성 기술을 엿볼 수 있다.

호로고루가 새롭게 정비되면서 성내부에는 기와건물들과 지하식 벽체시설, 우물 등이 만들어졌다. 특히 기와를 사용한 건물의 존재는 보다 높은 등급의 지휘관이 호로고루에 거주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연천호로고루 출토 유물들

호로고루에서는 남한지역의 고구려 유적들 중 가장 많은 기와가 출토되었다. 고대사회에서 매우 귀한 건축 자재였던 기와는 왕궁이나 사찰, 관아, 학교 등 공공건물에만 사용되었는데, 호로고루에서 이처럼 많은 기와가 발견된다는 것만으로도 호로고루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기와는 회색이나 회청색의 백제나 신라 기와들과는 달리 붉은색이나 황갈색을 띠고 있다. 기와의 외면에는 노끈문이나 톱날문, 격자문, 사격자문, 횡선문 등 다양한 문양이 찍혀 있고 내면에는 좁은 판자로 만든 와통(瓦桶, 기와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틀)표면의 모골흔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것이 특징이다.

우물지 내부에서 발견된 6엽의 연화문 와당을 통해 기와건물에 막새기와가 사용되었고 건물지 내에서 착고기와와 건물바닥에 깔았던 전돌들이 발견되고 있어 매우 높은 수준의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증거들은 다른 고구려 성들보다 호로고루에 더 높은 신분의 장수가 거주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호로고루가 고구려의 임진강 방어선을 관장하는 국경방어사령부의 역할을 수행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들이다.

기와류 이외에 동이, 접시, 시루 등 각종 토기들과 다리가 세 개 달린 벼루, 문자가 새겨진 토기들, 토제 저울추, 관모형 토제품 등이 발견되어 고구려군의 문화수준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 외에도 고구려병사들의 식생활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각종 탄화곡물이 출토되었는데, 쌀과 좁쌀, , 팥 등이 확인되었다. 육류로는 소···멧돼지·사슴·노루 등 다양한 동물의 뼈가 다량으로 출토되어 최소한 6종 이상의 동물이 식용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천당포성(사적 제468,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778번지)

당포성은 호로고루나 은대리성과 같이 삼각형 모양의 현무암 대지 위에 만들어진 고구려성으로 남쪽과 북쪽은 높이 15m에 달하는 절벽을 그대로 성벽으로 활용하였고 넓은 평지로 연결되는 동쪽 부분에 높이 6~7m, 길이 200m, 31m 규모의 석축 성벽을 쌓아 만든 성이다.

당포성이 위치한 마전지역(현 연천군 미산면 마전리)의 당개나루는 과거 개성에서 서쪽의 장단군(현 연천군 장남면)을 거쳐 동북쪽으로 우회하여 양주지역으로 진출하는 주요 교통로였다. 대규모의 군사이동은 호로고루나 육계토성 앞의 여울이 이용되었으나 이곳은 강의 양쪽에 견고한 성들이 가로막고있어 동쪽으로 우회하여 북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장 짧은 거리상에 당포성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곳이다.

당포성의 인공적으로 축조한 동측성벽은 호로고루의 동측성벽과 축조방법이 거의 같으며 성의 외벽에 수직의 기둥홈과 확이 세트로 발견되는점이 특징적이다. 이는 중국 집안의 환도산성이나 패왕조산성 등에서 관찰되는 고구려의 독특한 성곽 구조로 고구려 성곽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연천은대리성(사적 제469,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은대리 577번지)

은대리성은 호로고루나 당포성과 같이 삼각형 모양의 현무암 대지 위에 만들어진 고구려성으로 내성과 외성을 갖춘 이중방어 구조의 성이다. 전체 규모는 동서 400m, 남북 130m, 둘레 1,005m로 연천고구려 3대성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은대리성의 인공적으로 축조한 동측성벽(외성)은 기본적으로 호로고루나 당포성과 축조방법이 유사하나 잘 다듬은 석재를 사용하지 않고 막자른 현무암을 이용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우선 지표면을 평탄하게 한 후 그 위에 30~50cm정도 높이로 점토를 다져서 기초부를 만들고 중심부에는 현무암을 잘게 부수어 흙과 섞어 차곡차곡 다지면서 쌓아 올렸다. 이 다짐층 안쪽과 바깥쪽에 막자른 현무암을 쌓은 후 다시 석축벽의 바깥쪽과 위쪽을 점토로 30~50cm정도 다져 성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은대리성의 외성은 외관상으로 토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은대리성이 호로고루나 당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성을 기울여 만든성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비교적 단기간에 성벽을 구축했거나 주변에서 양질의 석재를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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