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방/짧은 생각들

설마리 전투--영국군

지도에도 없는 길 2010. 1. 31. 12:27

영국의 시인 T.S.엘리어트는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1951년 4월 21일부터 25 일까지 한국 설마리에 참전한 영국군 제29여단 그로스터 대대에게는 정말 잔인한 달이었다. 먼 이국에서 한국전에 참전한 이 대대는 중공군 63군 예하 187사단을 맞아 대대원 622 명중에서 39명만 탈출에 성공하고 다수가 사망 혹은 포로가 되었다.그러나 이 전투를 계기로 중공군은 약 60여시간을 동 전투에 시간을 허비하여 아군은 미 1군단의 전선조정에 적극 기여하게 되었다.단 1명의 전투이탈자도 없이 진지를 사수한 강한 군인정신은 한국전에 참전한 전 유엔군의 귀감이 되었다.


 이제 다시 4월이 왔으며,그들이 피 흘려 싸운 산하에도 진달래가 피고 나무잎들이 돋아나고 있다.겨우내 얼은 바위산과 작은 개울도 포근한 봄을 맞아 그 당시의 날처럼 봄 기운이 완연하다.진달래가 핀 기념비 옆 바위사이에는 여린 나무잎들이 화사한 봄 햇살을 받아 반짝이기 시작하고 그들이 싸웠던 중성산 정상과 235고지에는 푸른 나무들이 훌쩍 키가 큰 채로 힘차게 자라나고 있다.


 당시 전투에 참전했던 파라-호커리가 지은 "파란아리랑"에 의하면 당시 전장에서 군악 대장이 적에 대항해서 나팔을 불었는데 그 군악대장의 나팔 소리는 어두운 전장에서 중공군의 작전개시 나팔소리를 잠재울 수 있었다고 한다.


 해마다 4월 이맘때는 당시의 희 생된 전우들의 넋을 위로하는 행사을 한다. 당시 참전했던 노병들이 영국에서 직접 참가를 한다.행사간에는 군악대 나팔수의 나팔이 울린다.당시 전장에서 불었던 그 진군의 나팔소리 대신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의 나팔이 울린다.


 설마리는 지형상 긴 계곡으로 형성 되어 있다. 그 설마리 계곡의 초입을 지킨 영국군의 그로스터 대대는 설마천의 작은 계곡에 피를 흘렸으며,긴 계곡에 그들의 함성과 나팔소리를 목청껏 울려 펴지게 했을 것이다. 봄이면 계곡에 그 당시의 함성이 다시 들리는 듯하다. 바람이 불어오는 설마 계곡의 초입은 늘 그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뭉쳐진 의지로 가득하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그들의 피 뱆힌 절규가 남아 있고,작은 돌 하나에도 의미가 녹아 있다.


 또한 이 행사 중에는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이 주어지고 있다.1966년 서울의 구로여자 상업고들학교의 학생들이 야유회 중에 영국군 전적비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있었는 데 이러한 것을 영국군 참전용사 3명이 우연히 목격하고 감명을 받았으며,이들에 대한 수소문 끝에 학교를 방문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영국측과 학교가 상호 교류를 하 게 되었다.그리고 학교에서는 매년 학생들이 동 전적비에 대한 정화 작업을 하게 되었다. 1970년 전적비 행사시부터 구로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영국 왕실이 지정한 장학급 지급학교가 되어 장학금이 전달되게 된 것이다.아울러 1980년부터 유엔 한국 참전국 협회장(지갑종)의 제의로 현 전적비 책임지역내 학교인 적성종합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이다.장학금의 기금 조성은 영국의 한국전 참전용사회와 한국에 거주하는 영국 시민단체 및 각종기업의 한국지사에서 제공하고 있다.


 해마다 설마리의 4월은 나팔소리처럼 여리면서 깊게 봄을 맞이하고 있다.전쟁의 상흔을 잊지 못하는 나무들과 바위들.그리고 산 가슴에 울린 포성과 총성,함성이며 절규와 비명들이 골짜기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그 산의 언저리에 영국군 전적비가 있다.여느 기념탑처럼 자신의 조각을 가지지 않으면서 당시 사망한 시신을 임시로 모셨던 산 기슭 의 동굴을 막아 산의 한 부분에 기념물을 붙였다.어쩌면 산 전체가 기념물이 된 것 같다. 대낮에도 햇살이 쉬이 들지 않는 산 기슭.그날처럼 바위는 단단하게 산을 붙잡고 있다.시신들이 들려 내려오던 길목에는 바위틈에 부서진 작은 돌들이 흩어져 있다.그 곳 그 자리.나무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비추고 있다.  그 산 아래 비탈, 햇살이 쉬이 들지 못하는 자리에 기념비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영국군이 피흘려 싸운 중성산은 옛날 고구려와 신라가 처절하게 싸운 격전지 였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그들이 피흘려 지킨 역사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임진강을 앞에두고 먼 북한을 바라보노라면 지켜야할 이 땅은 너무나 값지고 아름답기만 하다. 봄 이 오는 산 중턱에 힘차게 솟이오르는 생명의 빛깔들. 산하를 푸르게 물들이는 저 푸름은 영원히 우리가 지켜야할 목표요 귀중한 생명인 것이다.


 해마다 4월이오면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헌신적으로 우리를 도와준 이국 전우들의 숭고한 정신과 넋을 높이 받들고 그들의 흘린 피의 값진 희생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금년은 더욱 6.25가 발발한지 꼭 60년이 되는 해이다. 다시한번 지나간 전쟁을 되돌아보면서 그동안 살기 바빠서 아니면 살아가면서 늘 마음 한쪽에 비워두었던 그 피흘려 싸운 이들. 우리의 선배 전우뿐 아니라 먼 이국에서 달려와 청춘을 초개와같이 버린 우방의 젊은 넋들을 다시한번 생각하고 위로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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