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암사지--절터
그 시절, 고려의 말기 쯤이었던가
여기 양주 땅에 이처럼 큰 절을 지었다니
그 흔적
그 자리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발굴이 한창 진행되었다
조선때 승려에대한 제도는 초기부터 제한이 되었다
도첩제가 생기고
유교 중심의 국가였기 때문에
혹은 개국 공신들에게 나누어 줄 토지 때문에
혹은 국가의 재정 수입을 튼튼히 하여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절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도 회수하고
승려의 수도 줄여나갔다
국교를 불교로 했던 고려의 흔적을 하나씩 줄여 나간 것이리라
그래서 유생들이 이 절을 훼손하였다고 하니
아깝다 이 거대한 역사의 흔적
목조 건물이야 그 이후에도 여러 전란에 의해 온전하게 남기가
어려웠겠지만
그 흔적은 지금 고스란히 주춧돌과 계단과
담장과 길과 물길과 건물의 터로 남아 있다
언젠가 저 건물들을 복원한다면 얼마나 큰 규모가 될 것인가
그 자리 그 흔적은
그 옛날
땀과 정성과 기술을 다시한번 절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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