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를 들으러 가다
술을 마시고 난 늦은 저녁, 인사동 어느 골목에서 이기윤 시인은
낯익은 전봇대에 기대어 있었다.
가벼운 몸을 떠받친 전봇대는 잠시 조금 기울어지다가
이내 제 자리로 돌아오고
이 시인은 그 가벼운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며
몸을 추스렸다
잠시동안의 일이었지만 내 기억은 늘 거기서 머무른다
시집을 내었을때 흔쾌하게 평을 써 주면서
격려를 해 주던 자상함
이 시인과의 추억은 생도 1학년때부터 였다
그리고 육사 이 시인의 사무실
마른 얼굴로 책의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끝내 폐암을 언급하지 않던 어딘가 쓸쓸해하던 얼굴
그 시인이 내게 말했다
대구로 부임해가는 내게 그는 한 스님을 소개해 주었다
천주교 신자인 이 시인이 스님을 소개해 주다니
그 스님과 시지의 어느 골목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 일 이후 봄 날
영내 절 옆 팔각정에서 따순 차를 마셨다
벚꽃이 화들짝 핀 봄날
팔각정 열어 둔 창문으로 벚꽃향이 가득 몰려 오던 시간
차 맛과 향내가 온 몸으로 감싸왔다
그렇게 그 시인은 떠났다
김해의 어느 마을에 작은 시비 하나 세워져 있다고 한다
풍경소리를 들으면 이 시인의 전봇대가 생각난다
인사동을 지나면 그 시인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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