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방/짧은 생각들

풍경소리를 들으러 가다

지도에도 없는 길 2011. 11. 28. 11:26

 

 

 

 

 

풍경소리를 들으러 가다

 

 

술을 마시고 난 늦은 저녁, 인사동 어느 골목에서 이기윤 시인은

낯익은 전봇대에 기대어 있었다.

가벼운 몸을 떠받친 전봇대는 잠시 조금 기울어지다가

이내 제 자리로 돌아오고

이 시인은 그 가벼운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며

몸을 추스렸다

잠시동안의 일이었지만 내 기억은 늘 거기서 머무른다

 

시집을 내었을때 흔쾌하게 평을 써 주면서

격려를 해 주던 자상함

이 시인과의 추억은 생도 1학년때부터 였다

 

그리고 육사 이 시인의 사무실

마른 얼굴로 책의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끝내 폐암을 언급하지 않던 어딘가 쓸쓸해하던 얼굴

 

그 시인이 내게 말했다

대구로 부임해가는 내게 그는 한 스님을 소개해 주었다

천주교 신자인 이 시인이 스님을 소개해 주다니

그 스님과 시지의 어느 골목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 일 이후 봄 날

영내 절 옆 팔각정에서 따순 차를 마셨다

벚꽃이 화들짝 핀 봄날

팔각정 열어 둔 창문으로 벚꽃향이 가득 몰려 오던 시간

차 맛과 향내가 온 몸으로 감싸왔다

 

그렇게 그 시인은 떠났다

김해의 어느 마을에 작은 시비 하나 세워져 있다고 한다

 

풍경소리를 들으면 이 시인의 전봇대가 생각난다

인사동을 지나면 그 시인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