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를 지키고 있는 것은 저수지의 물 뿐만이 아니었다.
너무 오래라서 죽은 듯했던 나무에서 잎이 피고
그리고 물이 나무의 전체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나무는 다시 일어났다.
해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면 기지개를 켜는 저 나무
저수지는 나무가 되기도 하고 물이 되기도 하고.....
가슴을 비우고도 살 수 있는 것을 저 나무는 알고있었다.
그 방법을 터득한 나무는 그래도 말이없다.
소리치지 않고도 그 자리에서 무언의 말을 전해준다.
나무의 가슴이 뚫리고
나무의 가슴이 마르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무의 가슴에 다시 물이 오르고
저수지 주변에 오는 사람들은 고기만 낚으러 오는게 아니다
나무의 뿌리에서
나무의 가지에서
저 무성한 가지에서 뻗어나온 잎들에게서
일깨워준다.
기다리라
사랑하라
그리고 멀리 보라고
그 나무에게도 두 다리가 있다.
튼튼하게 버티고 설 두 다리가 있다.
서로 다른 다리에서 버티고 선 뿌리가 든든하다.
아무리 오래 서 있어도 힘들지 않다.
잎이 몸을 흔들면서 즐거워하는 소리에 힘이 난다.
나뭇잎들은 간혹 까르르 거리면서 햇살에 하얀 웃음을 선사해준다.
그 맑은 웃음에 나무는 그저 힘이 난다.
오래되어 쓸모가 없어진게 아니라
오래되어 쓸모가 많아진 나무가 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을까
저 보이는 산들과 들을 지나
그리고 저 물을 건너서
시간의 흔적을 알려주는 물길이 저기 머물고 있다.
산으로 가는 길은 지금 사라지고
하늘이 보이는 이 자리에서 기다려도
흰구름이 가는 길은 늘 거기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리면서 지나온걸까
얼마나 손 흔들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나
길은 길대로 가고
물은 와서 여기 머문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기와서 위안을 얻는다
길을 따라 온 사람들이 발길을 나무가 잡는다
그리고 품어준다.
넉넉한 가슴 내어주고 선 나무여
푸근한 가슴 내어주고 선 오래된 나무여
시간만큼 오래 기다리고 선 나무여
그리고 햇살눈부신 오월의 끝이여
오래된 나무 사이로 보이는 저수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 자리를 지키며 기다렸을까
한 줄기에서 나와 사이가 벌어지면서 그러다가 다시 만나 서로 껴안고 살아가는 나무
가슴에 허리에 빈 구멍을 뚫고 바람을 지나가게 한다
바람을 막아서지 않고 바람을 지나가게 하면서 세월을 이겨낸건가
그렇게 가슴의 구멍을 크게 만들어서 세월을 이겨낸건가
나무를 지키던 사람도 떠나고
이제는 나무가 사람을 지킨다
기다린다
돌아오는 길은 늘 비어있다.
돌아오는 길을 늘 말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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