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제주 서귀포이야기

메밀밭 풍경

지도에도 없는 길 2020. 5. 27. 10:16

 

저녁이 오고 있다. 메밀꽃이 벌써 피어난다. 먼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고, 햇살은 저녁빛으로 물이든다. 흰 메멜이 자꾸 붉게 변색이 된다. 그늘에 선 꽃은 흰 빛으로 보이지만, 햇살에 드러난 먼 메밀꽃은 붉은 빛으로 탈색이 된다.

나는 자꾸 동쪽으로 가고 싶어졌다. 천천히 길을 찾아가는 네비에 몸을 맡기면, 그는 알아서 동쪽을 찾아갔다. 해가 지는 시기라 나는 동쪽이 좋았다. 햇살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길을 거슬러 갔다. 돌담들이 작은 틈 사이로 햇살을 걸러내기 시작하는 시간이 한참 흘렀다.

어무도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아 내가 거기 섰다. 그리고 그림자를 길게 남겼다. 나는 거기 서 있었지만, 오래 서 있을 수 는 없었다.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고, 햇살이 천천히 자신의 그림자를 그 자리에 심어두려 했다. 내가 소리쳐 그렇게 하지 말라고 외쳐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천천히 긴 그림자가 나를 지나갔다.

'제주여행 > 제주 서귀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국이 피다  (0) 2020.06.03
황우지해안으로 가다  (0) 2020.06.02
대나무꽃  (0) 2020.05.07
꽃비가 내리더니  (0) 2020.05.04
해녀의 손길  (0) 2020.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