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간다(2020.4.월 24일 제주신보 수록)
서정문(시인, 수필가)
동네 길에 벚꽃이 활짝피었다. 마스크를 낀 동네 어른 몇 분이 천천히 나무 아래를 걸어간다. 바람이 불자 벚꽃잎이 눈처럼 날린다. 요즘처럼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만 지낸 사람들에게 동네 꽃길은 포근한 위안이 아닐 수 없다. 해가 늬엇늬엇 지는 저녁, 종일 사무실에 있다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같이 사진반 활동을 하는 분이 동네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면서 단톡방에 벚꽃길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차를 몰고 그곳을 가보니 아담한 굽이진 길에 봄꽃이 가득하다. 물 마른 하천 바닥에는 유채꽃이 가득하게 피 있고, 길 옆으로 심어둔 벚나무엔 이렇게 꽃이 만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100대 명소로 꼽힌다는 가시리 꽃을 조기에 없앴다.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육지에서 온 관광객이 표선 일대를 다녔는데, 코로나 확진자 였다. 가시리 조랑말 체험장 일대의 드넓은 유채꽃밭도 트랙터가 폐기하는 사진이 언론에 크게 실렸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 달라는 호소에도 오래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꽃이 피는 곳으로 마구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리라. 관련 언론 기사는 ‘꽃구경보단 코로나 19 확산방지가 우선’ ‘성큼성큼 트랙터가 지나가자 유채꽃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이 맥없이 잘려나갔다. 트랙터가 지나간 길에선 비릿한 풀 냄새만 났다.’
가시리보다 먼저 유채꽃을 갈아 엎은 곳도 있다. 강릉이 그랬다. 관광객이 많이 몰리자 코로나 감염을 우려하여 조기에 꽃밭을 없앤 것이다. 오늘 뉴스에는 부산에서도 대규모 유채꽃밭을 갈아 엎는다고 한다. 이런 기사도 있다. ‘멀리 못가니 보이네. 동네 꽃의 아름다움’ 그렇다. 이제야 마을 주변의 꽃이 좀 더 가깝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 꽃들이 이제까지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저 느끼지 못하고 지나쳤기 때문일 것이다. 가까운 곳의 꽃들을 다시 돌아볼 계기가 된 것이다. 가까운 곳의 사람을 다시 바라볼 계기가 된 것이다.
동네에서도 이런 꽃길이 있다는 건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봄이 되면 사람들은 동네 길 대신 벚꽃이 유명한 곳으로, 유채꽃이 유명한 곳으로 몰려들었다. 꽃이 피지 않는 계절엔 벚나무가 동네길에 서 있는 지도 잘 알지 못했지만, 꽃을 화사하게 피우자 거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동네 구석의 한적한 길. 그 벚꽃길이 올해는 더 소중하고 귀해졌다. 멀리가지 않아도 봄이 온 줄 알고, 봄을 느끼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갇힌 생활을 오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호근동 길 옆의 벚꽃도 요즘 한창이다. 크게 자란 벚나무가 화사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일부러 차를 그 길로 몰아 꽃을 감상해본다. 서귀포는 그렇다. 집 앞을 나서면 공원이요, 바다가 보이는 곳이다. 오래 걷지 않고도 바닷가로 나갈 수 있다. 마스크를 끼고 천천히 걸어보면, 마주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씨앗을 뿌리지 않아도 절로 피는 유채꽃이며 보랏빛 무꽃들. 그리고 앞 다투어 피는 벚꽃. 이미 진 매화나무엔 작은 열매가 조롱조롱 매달려있다.
코로나 사태가 아직 종료되진 않았지만,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라 한다. 모이는 문화가 이전보다 줄어들 것이다. 거리두기로 인해 습관된 생활이 향후에도 이어져서 모임도 많이 줄어들 것이라 한다. 세계 여러나라가 같은 사태이니 경제적인 회복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따라서 생활 패턴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늘 책을 빌리려가던 도서관도 오래 문을 닫고 있다. 집안에 있는 책들을 뒤적이다가도 문을 닫은 도서관 앞을 지나쳐본다. 마을회관 건강센터도 불이 켜지지 않는다. 운동기구들도 오래 사용하지 않아 녹이 슬지나 않았나 걱정된다.
가까운 예술의전당 플랭카드가 걸린 자리는 휑하게 비어있다. 바람만 깃대를 쓸고가는 저녁은 온통 빈 자리가 아리게 느껴진다. 급기야 예술의전당에서는 무관중 공연을 진행하여 온라인으로 공연을 보여주는 시도도 하고 있는 것 같다. 비어있는 자리가 점점 늘어나고 길어지는 가운데도 바다와 바람과 자연은 천천히 제 갈길을 가고 있다. 꽃이 피었다가 지고, 열매가 맺혀지고 있다.
사람들의 발길의 오래 주춤거리고 멈추어 섰지만, 이 사태가 오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가 안정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을 무렵, 유럽과 미국 등의 나라에서 코로나 발생이 기승을 부리니 뉴스는 온통 그 이야기 뿐이다. 세계가 오랫동안 숨을 가쁘게 하며 살고 있다. 계절은 곧 여름으로 접어드는데, 이 사태가 어서 마무리 되기를 기대해본다. 어제는 비가 오고 바람이 불더니 오늘 아침은 더없이 맑고 깨끗한 날이다. 자연의 현상처럼 이 인간세상의 나쁜 것들도 새 날이되면 말끔하게 씻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아, 4월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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