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문의 역사칼럼
두문불출(杜門不出)하다
칼럼 ㅣ 서정문 칼럼니스트 ㅣ 2018년 07월 18일 (수) 18시 01분 54초 |
기울어가는 고려 왕조이지만 고려를 버리고 조선을 선택할 수는 없다. 자신들이 받들던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를 따르지 않겠다면서 경기도 개풍군 송악산 서쪽에 있는 두문동으로 72명의 고려 충신들이 들어간다. 관복과 조복, 관모를 벗어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헌옷으로 갈아입고, 산으로 들어간다.
이성계가 이들을 설득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한다. 이들을 포위하고 산에서 나오게 하려고 불을 지른다. 그러나 그들은 깊은 산속에서 나오지 않고 모두 불에 타서 죽는다.
이때 황희도 그 72명 가운데 포함된다. 함께 은거하고 있던 고려의 신하들이 황희에게 이른다. “절개는 우리가 지킬 테니, 자네 같은 인물은 백성들을 위해 일해야 하네. 백성들 역시 먹고 살아야 하지 않나”하면서 황희를 설득하여 두문동에서 나가게 한다. 그가 청빈의 대명사인 조선의 황희 정승이다.
황희는 “백성이 오직 나라의 근본이요, 근본이 튼튼하여야 나라가 편안합니다”라고 하며 오로지 백성들을 위해 일을 한 정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6진을 개척한 김종서를 병조판서로 추천한다. 하루는 회의 석상에서 다소 거만해진 김종서가 술에 취해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것을 본다. 그는 하급관리에게 “지금 병판의 자세가 바르지 않으니 의자의 다리가 잘못된 모양이다. 어서 고치도록 하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김종서는 얼른 자세를 바로 고친다.
어느 날 좌의정 맹사성이 황희에게 묻는다. “김종서는 당대의 재상이고 그대가 추천한 사람인데, 어찌 그리 야단을 많이 치시오?”라고 한다. 그러자 황희는 자신이 앉은 의자를 툭툭 치며 “김종서는 이 자리를 이어받을 사람이오. 그러자면 저 거만하고 과격한 성품을 자중하도록 하지 않으면 반드시 낭패를 겪을 것이오”라 한다.
그런 조선의 명재상 황희. 그를 두문동에서 내보낸 고려 충신들의 나라 사랑과 백성 사랑의 안목과 마음 씀씀이를 어찌 잊을 수가 있으랴. 우리의 선조들은 이렇듯 충신으로서의 면모도 강했지만,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또한 그에 못지않음을 알 수가 있다.
![]() | 서정문 칼럼니스트 ㅣ 시인, 수필가 / 정치학 박사 |
연성대 겸임교수, 전 성결대 외래강사 육군 대령 전역, 한미연합사, 국방부, 주 자유중국(대만) 대사관 연락관 근무, 연대장 시인, 수필가, <우리문학> 및 <한국수필> 등단 국제펜클럽 이사, 한국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 회원 전쟁문학상, 화랑문화상, 국방부 주관 호국문예 시 당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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