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방/짧은 생각들

봄, 저녁무렵

지도에도 없는 길 2012. 4. 29. 23:22

 

 

 

 

 

봄, 저녁무렵

 

노을이 지는 저녁이면 서쪽 하늘은 붉어집니다

어린시절 농촌에 살던 저는

노을이 붉게 물드는 날이면

다음 날을 걱정하지 않는 시골사람들은 자주 보았습니다

다음 날 날씨는 맑음이라는 것이지요

농사일을 하는데 날씨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니

농민들은 절로 그것을 터득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둔 즈음에 사진을 찍으면

셔터 속도가 늦어서 사물이 흔들려 나옵니다

적당히 흔들리면 간혹

흔들리는 사물의 모습이 실제처럼

그 보이지 않는 흔들리는 것들이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어둠의 꽃을 찍었습니다

후레쉬 없이 그대로

꽃이 흔들리고 싶어하는대로 두었습니다

꽃들이 지그재그로 흔들립니다

아니 가만히 보니 흔들리는 것은 제 손이었습니다

상대편은 흔들리지 않는데

흔들리는 것은 바로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봅니다

 

세상사는 이치가 그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바로 알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봄 꽃이 바람 없이도 절로 흔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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