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잔미성(二殘眉城)에 대한 명칭고찰.
호로하 南北兩岸에 존재하는 옛 보루에 대한 언급은 효종9년(1658) 6월 3일부터 3박4일간의 기행문인 미수 허목의 ‘무술주행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날이 저물어 돛을 올리고 호로탄(瓠蘆灘)으로 올라가니, 여기가 호로하(瓠蘆河)이고, 그 위는 육계(六溪)이다. 또 옛날 진루(陳壘)가 있는데, 앞의 여울은 아주 험하며 사미천(沙彌川)이 여기로 들어온다. 상류에 옛 성이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대해 있는데 석벽으로 되어 있어 견고하다. 강가의 부로(父老)들 사이에 서로 전해 오기를, 옛날 만호(萬戶)의 진루였다고 하나 이것은 알 수가 없다. 고려 때에 여러 번 거란(契丹)의 병화를 입었으니 이곳은 전쟁터로 오늘날까지도 옛 자취가 이와 같은 것인가.”
호로하 남안의 보루에 대해여 1994년 육군사관학교박물관은 보고서에서 ‘편의상 임진강 남안의 호로고루’로 부르려 한다.‘고 했고,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00년에 펴낸 <군사보호구역 문화유적 지표조사보고서(경기도 편)>에서 남안성을 ‘이잔미성’이라 불렀다.
이렇게 되어 호로하 南岸의 보루는 “호로고루 남안성(瓠蘆古壘 南岸城)”과 “이잔미성(二殘眉城)”이라는 두 개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왜 이잔미성일까? 한자의 뜻을 풀어헤쳐봐야 ‘두 가닥 남은 눈썹 성’이 되니 아무 소용이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北岸에 있는 호로고루가 ‘첫 번째 잣뫼성’이고 南岸城은 ‘두 번째 잣뫼성’이라는 뜻에서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호로고루(瓠蘆古壘)의 다른 이름으로 강안성(江岸城), 자미성(紫嵋城), 재미산(財尾山)이 있는데 강안성(江岸城)은 임진강 즉 호로탄(瓠蘆灘)언덕에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자미성(紫嵋城) 재미산(財尾山)은 城의 고어 '잣'과 산의 고어인 ‘뫼’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남북으로 이어지는 성벽이 산처럼 보이므로 우리말로 '잣뫼'라 불렀는데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지금처럼 여러 가지로 표기하게 된 것이다.
북쪽에서 본 이잔미성
호로고루 남안성(瓠蘆古壘 南岸城)
소재지; 파주시 적성면 장좌리. 고구려성인 호로고루 북안성과 임진강의 여울목을 사이로 마주하고 있다.
형태; 테뫼식(원형)
해발고도; 30m
둘레; 300m
축성재료; 石
시대; 삼국
일명; 이잔미성(二殘眉城)
주한미군 공여지 내에 고구려 문화유적 방치돼 있어
남안 호로고루성에 대해서는 지난 94년 경기도 파주일대 군사보호구역 내 지표조사를 실시한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의 보고서와 91년부터 2000년까지 군사보호구역 문화유산 지표조사를 실시한 국민문화재연구소 보고서에 언급돼 있다.
"이 북안 고루의 동남방, 적성면 장좌리에 조그만 석축 보루가 또 하나 있다. 북안 고루와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데 편의상 임진강 남안의 호로고루로 부르려 한다.
지금은 군부대의 진지가 되어 그 형태를 거의 짐작하기 힘들게 되어 있고, 석축이 무너진 것으로 짐작되는 돌무더기 정도가 발견될 뿐이다. 이런 점에서 호로고루 성지에 대한 보다 자세한 조사 및 발굴 작업이 요청된다. 이러한 작업이 남한에 흔하지 않은 고구려 계통의 성곽 연구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1994년 / 육사박물관>
"이잔미성(남안의 호로고루성)은 적성에서 가는 37번 국도를 타고 가다 금파리에서 좌회전하여 장파리쪽으로 계속 가다보면 마을이 끝나면서 민간인 통제초소가 나온다.
이곳에서 직진하여 '장좌못'이라는 곳에 이르면, 이곳의 우측에 해발 53m의 낮은 야산이 동서로 이어져 있다. 이곳은 현재 군부대의 관할 하에 있으며, 성터는 군부대의 대공초소가 있는 곳으로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호로고루성이 동서로 상대하고 있다." <2000년 /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구려 ‘호로고루 성지’ 지표조사 해놓고 관리 안 해
육군과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이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장좌리에 있는 삼국시대 문화유적을 10여년에 걸쳐 여러 차례 문화재 지표조사를 해놓고도 미군 사격장 안에 있다는 이유로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방치해온 것으로 7일 드러났다. '호로고루’ 성지로 알려진 이 문화유적은 남한 지역에서 몇 안 되는 고구려 유적 가운데 하나로 이곳을 조사했던 학자들은 보존해야 할 중요한 문화재라고 손꼽았다. 이곳은 지난 89년부터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94년), 국립문화재연구소(2000년) 등 호로고루 성지관련 문화재 지표조사만 세 차례 넘게 실시했다.
호로고루 성지는 경기도 연천군과 경기도 파주시에 각각 북안성과 남안성이 자리 잡고 있다. 지표조사 뒤 호로고루 북안 성지는 경기도 문화재 제174호로 지정됐지만, 남안성은 주한미군 2사단 사격장(OO사단 수색대 대공초소 자리)에 자리 잡고 있어 지표조사를 실시해놓고도 문화재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호로고루 남안 성지는 문화재가 있다는 사실만 기록에 남았을 뿐, 현재 어떤 상태로 보존돼 있는지 파악조차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문화재 보호 및 관리를 맡고 있는 파주시청과 문화재청 또한 호로고루 남안 성지가 있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파주시청 쪽은 “호로고루라는 지명을 처음 들어봤다”면서 “미군 사격장 안에 있으면 문화재 파악이 안 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또한 호로고루 성지와 관련해 “경기도 문화재(북안 성지를 가리킴)로 보호하고 있다”는 내용만을 알고 있을 뿐, 남안 성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반면 육군사관학교 육사박물관이 지난 94년에 펴낸 <경기도 파주군 군사유적 지표조사보고서>를 보면, 호로고루 남안성지에서 암키와와 토기 등이 발굴됐고, 이 지역이 “고전사 연구에 중요한 일조를 담당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조사를 맡았던 육사박물관쪽은 “호로고루는 호로하를 도하하는 세력을 강가에서 격퇴하는 임무를 지닌 제일선의 전방 추진진지의 역할을 하고 있었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비록 기록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채집되는 와당 편들이나 토기 편들이 고구려 계통인 점을 미루어 볼 때, 삼국 중에서 고구려가 호로하를 도하하는 백제 또는 신라 세력을 방어하려고 구축한 제일선 진지가 아니었던가 생각한다”면서 “남한에 흔하지 않은 고구려 계통의 성곽 연구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삼국시대의 고전사 연구에도 중요한 일조를 담당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문화재청의 소속기관인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 2000년에 펴낸 <군사보호구역 문화유적 지표조사보고서(경기도 편)>에서도 OO사단 수색대 대공초소가 있는 곳이 남안 성지라고 적어 놨다. 이 보고서에서는 남안성을 ‘이잔미성’이라 불렀다.
“이잔미성은 적성으로 가는 37번 국토를 타고가다 금파리에서 좌회전하여 장파리쪽으로 계속 가다보면 마을이 끝나면서 민간인 통제초소가 나온다. 이곳에서 직진하여 ‘장좌못’이라는 곳에 이르면, 이곳의 오른쪽에 해발 53m의 낮은 야산이 동서로 이어졌다. 이곳은 현재 군부대의 관할 하에 있으며, 성터는 군부대의 대공초소가 있는 곳으로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호루고루성과 동서로 상대하고 있다.”
조유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전 소장은 보고서 발간사를 통해 “임진강을 접하는 파주시와 연천군에는 삼국시대 삼국의 접경지역 답게 군사요충으로서 시설인 여러 형태의 성곽이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면서 “임진강 한탄강 유역은 구석기 유적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구석기시대 석기공작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홍적세에서 고인류의 생활양식을 규명하는데 필요한 지역임과 아울러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 전기까지의 유적도 많이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적었다.
조 전 소장은 또 “개발에 앞서 이 보고서가 문화유산보호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해 마지않으며 이번 조사시 불가능했던 비무장지대의 조사도 빠른 시일 내에 지표조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고 적어 놨다.
장좌리에 사는 마을 주민 최아무개(46)씨는 “문화재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막상 남아 있는 게 없다”면서 “예전에 대규모 조사를 한 것을 보기는 했지만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성한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간사는 “10년 전에 실시한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에서도 있다고 밝힌 문화재를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늦게라도 제대로 된 조사를 해서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신문 / 2004-07-07>
長佐里는 장자못이 있으므로 장자울, 장좌울, 장좌동이라 한데서 그 명칭이 생겼고, 좡좌리의 계암동은 장자울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괘암바위가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장좌리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어디를 가더라도 자장리와 장좌리를 구분 짓는 안내판이나 이잔미성을 알리는 이정표가 없다. 자장리 동네사람들도 이잔미성의 존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2,011년 봄에 찾아 나섰다가 실패했던 이잔미성. 이번에는 금년 4월에 답사하신 분의 친절한 블로그글 안내에 따라 제대로 찾았다. 37번 도로 자장사거리에서 자장리를 거쳐 장좌리로 들어가야 비로소 이잔미성으로 갈 수가 있다. 찾아가는 길을 다시 정리한다.
마을회관을 지나 콘크리트 길로 쭉 직진 - 삼거리에서 임진강전망대방향으로 우회전 - 100m지나 삼거리에서 좌회전 - 계속 직진하면 영점사격장 - 영점사격장에서 100m 직진하면 삼거리 -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넓은 운동장 나옴 - 차주차한 후 2시 방향으로 진흙탕길 군용도로를 오르면 삼거리 나옴 - 삼거리에서 좌측길로 직진하면 성터(군부대의 대공초소)가 나온다.
넓은 운동장
차를 주차하고 성으로 오르는 황토진흙탕길.
이잔미성을 기반으로 성의 북벽위에 만들어진 우리군의 망루. 풀과 나무로 무성하게 뒤덮여있어 성의 흔적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기에 대강의 윤곽만 살폈고, 대신에 나는 삼국시대의 전사가 되어 망루에 올라 북쪽의 임진강과 고랑포적벽, 호로고루를 한참동안 조망했다. <↓아래 사진들.>
호로고루 (瓠蘆古壘)
호로고루에서 본 이잔미성.(산 오른쪽 거의 마지막 부분)
호로고루에서 본 이잔미성.
이잔미성(보루)의 선명한 사진보기
☞ http://photo.naver.com/view/2005091317094945093
☞ http://blog.naver.com/esg7993?Redirect=Log&logNo=100185957926
성터 흔적들↓ <아래 사진들>
북쪽 성벽
남쪽 성벽
장자못 가는 길. 철조망 앞에 멈춰 서서 녹이 쓴 탱크.
지금은 들어 갈수 없는 장자못. <사진; 찌그로님>
이렇게 철조망에 가로막혀 더 이상 강 쪽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탱크저지시설물 위에 산나리가 빨갛게 피었다.
파주시 자작리 절벽위에서 연천군 원당리적벽을 보다.<↓아래 사진들>
호로고루.
원당리 주상절리적벽
우리군 참호의 교통로 위에 핀 산나리.
강바닥으로 내려가지도, 강을 건너 남쪽으로 오르지도 못하도록 철조망을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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