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전통의 향기

[스크랩] [(여행)] 안동 벽화마을로 떠나다.

지도에도 없는 길 2013. 9. 9. 07:23

 


신세동 벽화마을 앞 마싯타 카페
가끔 시간이 멈추는 공간을 경험할 때가 있다. 초등학교 때는 부모님이 맞벌이 하시던 친구 집에 가면 한없이 슈퍼 마리오 게임을 하며 놀다가 날 찾던 엄마에게 혼나며 돌아오곤 했었다. 대학교 때는 과방에만 가면 그렇게 마음이 느긋해져서 세균이 오백만 마리 이상은 반드시 있을 것 같은 오래된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하곤 했다. 그리고 어느새 정직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안달복달 살아가는 사회인이 된 2012년 여름, 비가 오락가락하던 안동에서 마냥 머물며 쉬어가고 싶은 카페 한 곳을 발견했다.


신세동 벽화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마싯타 카페는 대여섯 명 정도 앉으면 꽉 찰 것 같은 작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주로 테이크 아웃을 하는 손님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장식장에 잔뜩 진열되어 있는 신기한 물건들이 발목을 붙잡는 것 같아 음료만 사서 나갈 수가 없었다.



결국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는 게 한참이 되고 말았다. 메뉴는 더치커피, 레몬티, 국화차, 세 가지로 모두 2,500원씩이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지친 탓에 시원한 레몬티를 주문했는데 직접 담근 레몬으로 만든 그 맛이 일품이었다. 얼음까지 꼭꼭 씹어 먹고서야 겨우 카페를 나섰는데, 나온 지 얼마 안돼 쏟아지는 소나기에 다시 카페로 돌아가서 결국 레몬티 한 잔 더 마시고 돌아왔다. 단 한 번의 방문으로 단골이 된 기분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안동'하면 떠오르는 곳이 아닌 곳에 가고, 생각나는 먹거리가 아닌 것을 먹고 싶었다. 하회마을이나 도산서원은 이미 가보기도 했었고, 찜닭이나 간고등어구이 외에도 맛있는 것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동에서 첫 식사는 배고픔을 이기며 찾아간 안동 신시장에서 만난 소머리국밥이었다. 시장에는 돼지나 소의 부속이나 머릿고기 등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이 있었는데, 더운 날씨에 지친 탓에 기운이 나는 음식이 먹고 싶어 얼른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끓여 놓은 고깃국물은 고체 형태로 물렁물렁하게 굳어 있었다. 아주머니는 그 고체 형태가 된 고깃국물 한 바가지를 퍼내어 팔팔 끓이기 시작하셨다. 매콤한 국물에 살코기가 들어간 국밥을 생각했던 우리는, 뽀얀 국물에 머릿고기가 가득한 모습에 약간 의아하기도 했지만 한 수저 맛보고는 저절로 '좋다'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머릿고기는 도가니랑 좀 비슷한 식감이었는데, 쫄깃쫄깃하지만 느끼하지 않았다. 다대기를 풀어 깍두기와 함께 먹으면 찰떡궁합, 통속적이지만 가장 적당한 표현이었다.


점심을 든든히 먹은 탓에 저녁은 버버리 찰떡으로 간단히 때웠다. 버버리는 벙어리의 안동식 방언으로 한 입 베어 물면 너무 크고 맛있어서 벙어리처럼 말을 할 수 없게 된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이름이 과장이 아니었다. 찰떡과 팥고물이 두툼하게 어울려진 이 찰떡은 안동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로, 꼭 한번 먹어보라 말하고 싶은 보석 같은 먹거리다






안동의 물그림자    글: 이려진

여행의 목적은 언제나 채우기보단 비우기 쪽이었다. 낯선 곳에 가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얻어오는 뿌듯한 풍요로움보다는,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모든 것을 온전히 내려 놓은 채 그저 그곳에 흠뻑 젖어있는 게 좋았다.

이번 안동 라이딩 역시 그랬다. 생각 없이 떠난 여행길이었지만 벽화마을의 담벼락에도, 마싯타 카페의 책꽂이에도, 신시장 내의 허름한 식당 의자에도, 발길 닿는 곳곳마다 나도 모르게 쌓아두고 있었던 시름과 고민거리들을 덜어내고 있었다.


장마철이라 비가 오락가락해서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부터 우려했었는데, 비구름이 피해갈 것 같았던 안동 지역도 역시나 산발적으로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해, 무더운데 습하기까지 한 엄청난 꿉꿉함 속에서 하루 종일 페달을 굴리고 굴렸다. 그렇게 쉬지 않고 안동 구석구석을 훑고 낙동강 종주길에 오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며 멈춰 서게 되었다. 분명 처음 오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펼쳐진 강 위에 고요하게 자리하고 있는 물그림자에서 어딘지 모르게 익숙함과 그리움이 묻어나던 그곳은, 그와 종종 드라이브 했었던 그곳과 닮아있었다.


사람과 사람과의 거리는 저마다 다르기 마련인데,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편한 사람이 있고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만 더 나은 사람이 있다. 나는 우리가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가깝다고 생각했었고, 그렇기에 서로에게 가장 도움이 되어줄 수 있는 사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처음부터 모두 알고 시작했지만, 현실을 부정한 채 감정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합리화시켜가며 덮어두고 이어온 만남이 잘못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냉정했고,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참 동안 물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와 난 이렇게 다리 위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바라보아야만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관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그림자는 너무 가까이에서 보려 하면 내 자신이 비쳐 그를 온전히 볼 수 없고, 그 아름다움에 심취해 행여 손을 뻗기라도 하는 순간엔 사라져버리고야 마는 신기루 같은 존재다. 너무 멀리에서는 아예 보이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만 온전하게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관계. 내게 있어 그는 물그림자와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안동만이 줄 수 있는 안락함과 예스러움, 그리고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풍경 속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그와의 관계를 제대로 인지하게 되었고, 그것을 마음 속에 오롯이 각인시켰다. 난생 처음 찾은 안동에서 그렇게 헛헛한 깨달음을 얻고, 아끼는 이를 고스란히 묻어둔 채 돌아섰다. 그렇게 마음을 덜어내고 서울로 올라오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허풍쟁이의 딸   글: 김희진

대학교 4학년 겨울에 처음 안동에 왔었다. 당시 나는 작가가 되겠다는 핑계를 대며 별다른 취업준비를 안하고 있었지만, 사실 어떻게 해야 작가가 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졸업을 하고 나면 매일 아침 갈 곳이 없는데, 그럼 난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같이 갔던 친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버지 고생 그만 시키려면 취직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시골에서 아버지가 소를 키워 대학에 보낸 친구였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 했던 친구가 왜 갑자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지는 의아했지만, 공무원 시험은 당시 졸업생들 사이에서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는 마지막 보루 같은 것이었기에 난 그저 친구를 응원했다.



말이 대학생이지 실제 대학생이 받아야 할 수업은 모두 마친 상태였던 우리는 한참을 버스 터미널에 앉아 있었다. 어딘가 가고 싶긴 했는데, 사실 어디론가 떠나본 적도 없었다. 그때 마침 버스 터미널 광고판에 안동으로 오라는 광고 문구 하나가 나왔다. 나는 "저기나 가볼까?"라고 말했고,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안동에 갔다.

우리는 우선 하회마을로 갔다. 그리고 제법 걸어서 근처 부용대도 올랐다.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황진이>에서 부용대에 올라 춤을 추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며 한바탕 큰소리로 웃어 젖혔다. 그리고 시내로 돌아와 가장 싼 모텔방을 잡았다. 뭔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주인 아주머니가 왜 그러시나 싶었는데, 방으로 올라가보니 빨간 욕조와 화장대 서랍에 준비된 성인 용품 등을 보고 여기가 러브 호텔이란 것을 알았다. 우리는 또 한번 큰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경험하지 못할 만큼 소주를 마셨다. 정신 없이 마시고 또 마시며 울다가 웃다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도 하고, 자신의 가장 치욕스런 연애 경험을 고백하기도 했다.


다음날 오전 내내 숙취에 괴로워하다 오후가 되어서야 도산 서원으로 향했다. 우리는 강가에 앉아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Damien Rice의 'Blower's Daughter'를 들었다. 영화 <클로저>에 나오는 그 노래는 세상 어떤 노래보다 우울했지만 세상 어느 노래보다 듣기 좋았다. 제목을 우리말로 하면 '허풍쟁이의 딸'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얼핏 들은 적이 있었는데,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왜 그런 제목이 붙었는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 커다란 위로가 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신비한 순간이었다.

또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다음 날엔 새벽부터 일어나 목욕을 하기로 했다. 지도에 표시된 온천 표시를 보고 찾아갔는데, 알고 보니 동네 할머니들이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는 버스를 타고 한꺼번에 모여서 찾아오는 동네 목욕탕이었다. 우리를 제외한 모든 손님이 커트에 파마머리를 하고 있었다. 평균 연령이 65세 정도는 족히 될 것 같은 그곳에서 나는 수많은 할머니들의 등을 밀어드리며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리고 친구와 서로의 등도 밀어주고 제 몸의 때도 실컷 벗겨냈다. 목욕을 마치고 밖에 나서니 주변엔 그저 논두렁만 길게 이어져 있었다. 친구와 그 시골길을 걸으며 잘 살아보자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상쾌해서 두 팔을 벌리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던 것도 같다.


'안동'을 떠올리면 아직도 대학교 4학년 겨울의 찌질했지만 아름다웠던 추억이 생각나 미소를 짓게 된다. 그리고 공무원 시험에 몇 번 떨어진 후, 연락이 닿지 않는 그 친구가 생각난다. 다시 한번 안동에서 그 친구와 허풍쟁이의 딸을 함께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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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토지사랑모임카페
글쓴이 : 운 영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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