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방/짧은 생각들

월남 귀국박스

지도에도 없는 길 2013. 3. 2. 10:19

 

 

 

 

 

 

 

 

월남 귀국박스

 

그 낮은 처마 아래 저 박스가 놓였다

표지가 붉은 사진첩 속에서

월남 아오자이 처녀들이 야자수에 기대어 있었고

해변 어딘가에서 검붉은 웃음의 서 중사는

웃통을 벗은 채 흰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푸석한 흙들이 마르면서 떨어지는 처마 밑에 앉아

어린 날 친척 아재는 그 사진을 보여 주었다

영어가 무언지도 모르던 날

그 박스가 풍기는 나무 내음을 영어냄새로 느꼈다

 

모두 떠난 처마 아래

귀국박스가 놓였던 동향 자리는

햇볕만 가득하게 재잘거리고

빈 자리 푸석한 흙벽

그 때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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