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귀국박스
그 낮은 처마 아래 저 박스가 놓였다
표지가 붉은 사진첩 속에서
월남 아오자이 처녀들이 야자수에 기대어 있었고
해변 어딘가에서 검붉은 웃음의 서 중사는
웃통을 벗은 채 흰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푸석한 흙들이 마르면서 떨어지는 처마 밑에 앉아
어린 날 친척 아재는 그 사진을 보여 주었다
영어가 무언지도 모르던 날
그 박스가 풍기는 나무 내음을 영어냄새로 느꼈다
모두 떠난 처마 아래
귀국박스가 놓였던 동향 자리는
햇볕만 가득하게 재잘거리고
빈 자리 푸석한 흙벽
그 때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