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20100519 김용사(金龍寺) (2) 목단꽃이 지는 오후

지도에도 없는 길 2011. 3. 17. 09:33

 

                          

                              20100519 김용사(金龍寺) (2)

 

                                               목단꽃이 지는 오후

 

 

 

 

 

출처 - 김룡사 홈페이지

 

운달산김룡사사적서 <雲達山金龍寺事蹟序> 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10년 (588) 운달 조사(雲達祖師)가 개산하여 사명을 운봉사(雲峰寺)라 하였다고 되어있다. 따라서 본래의 절 이름은 운봉사란 사명이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중에 전해지는 괘불화기(掛佛畵記 ,1703년) 에도 운봉사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명이 김룡사로 바 뀐 연유는 여러 가지로 전해지고 있으나, 그 중에서 가장 믿을만한 것은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지어 이곳 운봉사 아래에 피신하여 숨어 살면서 신녀가(神女家)를 만나 매양 지극한 정성으로 불전에 참회 하더니 한 아들을 낳아 이름을 용이라 하였다. 그 이후부터 가운이 크게 부유해져 사람들은 그를 김장자(金長者) 라 하였고,이로 인하여 동리 이름 또한 김룡리(金龍里)라 하였으며, 운봉사 역시 김룡사로 개칭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절은 최소한 18세기 이후 김룡사란 이름으로 되었다고 생각된다.
운달조사의 개산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전기까지의 사적에 대한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고, 다만 임진왜란으로 전소 되었다가 다시 중창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 후기의 사적에 대하여는 <운달산김룡사사적>에 의지하여 기록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출처 : 바람의 궁전
글쓴이 : 프라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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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 25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35호로 지정되었다. 운달산(雲達山) 남쪽에 있으며, 588년(진평왕 10) 운달(雲達)이 창건하였다.
1625년(인조 3)에 혜총선사(慧聰禪師)와 그 제자인 광제(廣濟)·묘정(妙渟)·수헌(守軒) 등이 재건하였다. 일제강점기까지는 전국 31본사 중의 하나로서 50개의 말사를 거느린 절이었으나 지금은 비구니들의 수도처로서, 옛 말사였던 직지사의 말사가 되었다.
 
현재의 대웅전은 17세기에 건립된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로 외3출목·내4출목으로 되어 있고, 상부 가구(架構)는 5량가(五樑架)이다. 천장은 세 가지 종류의 반자로 재치있게 처리한 점 등 한국 건축의 특징이 잘 드러난 건물이다.
기둥의 둘레는 약 2m이나 특이하게도 기단 위에 주춧돌 간의 수평을 잡지 않은 상태에서 기둥을 세워 각 기둥의 길이가 서로 다르다. 각 기둥이 건물의 안쪽으로 약간씩 기울어져 있어 건물 자체에 안정감을 주는 특수 기법을 사용하였다. 대웅전에는 삼존불 외에 1644년에 조성된 삼장탱화와 괘불(경상북도유형문화재 303)이 봉안되어 있다.
 
 
     
 
석가삼존불좌상(釋迦三尊佛坐像)으로 삼세불(三世佛)을 모시고 있다. 중앙에는 현재의 석가모니를 안치하고 오른쪽 (向左)에는 미래를 상징하는 아미타불, 왼쪽(向右)에는 과거 를 나타내는 약사불이 봉안되어 있다.

후불탱으로는 석가후불탱 가운데 영산회상탱(靈山會上幀)이 걸려 있다.
 
△ 대웅전(大雄殿) 후불탱(後佛幀) 보살상(菩薩象)  

 

     
 
 
1703년(숙종 29) 5월 14일 운달산(雲達山) 운봉사(雲峯寺:김룡사의 옛 이름)의 괘불로 만들어졌다. 대웅전(경북문화재자료 235)에 보관되어 있는데 그린 사람은 알 수 없다. 화면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표현된 본존불 아래에 2구의 협시불과 사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사천왕 뒤쪽으로 6구의 협시불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또 본존불의 머리 양쪽에 5구씩의 10대제자와 그 뒤쪽에 타방불(他方佛)로 보이는 4구의 여래상이 배치되어 있다. 보살 외곽에는 인왕(仁王)과 팔부신중(八部神衆)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외곽선 밖에는 원 속에 산스크리트를 써서 사방에 빙 둘러 놓았다.
 
이 거대한 괘불은 비교적 섬세하고 다양한 선을 구사하여 그림이 돋보인다. 아래의 가운데에 그림의 제작 시기, 기원문 그리고 시주한 50여 명의 명단이 적힌 제명기(題名記:畵記)가 있다.
 
 

 

 

 

 

 

 

 

 

 

 

 

 

 

 

 

 

 

 

 

 

 

 

 

 

 

 

 

 

 

 

 

 

 

 

 

 

 

 

 

 

         할미꽃도 지고...

 

 

 

 

                               부채에 그림을 그리시는 선생님....감사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더 그리시지 못하시고 일찍 내려오셔야 했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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