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헌을 가 볼까
대구서씨 약봉 서성의 태실이 있는 소호헌. 특이한 사연으로 인하여 보물로 지정 받았다.
마침 만난 그 후손 한 분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책도 한 권 주었다. 상당히 많은 분들이 정승을 한 집안, 뼈대있는 가문인 것으로 보인다.
약봉 서성의 태실이다. 약봉의 부친은 고성이씨 임청각의 후손을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여기 계신 분을 그렇게 설명을 하지 않았으나 이 소호헌을 그 친정에서 지어주었다고 하던가. 안동댐 가는 길에 있는 임청각의 모습보다는 단아하고 소박한 모습이다.
이 소호헌이 특이한 것 중의 하나이다. 보통집은 주춧돌에 바로 기둥을 세우지만 이 집은 주춧돌 위에 나무를 받치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왕실에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했던가.
기와를 보라. 저 무늬는 왕실의 건물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란다. 이 소호헌의 건물에는 지붕 곳곳에 그런 것이 사용되었다. 왕실에서 용인해 줄 만큼 그 세가 강했던지.... 그 후손이 영의정, 좌의정도 여럿 나오고. 영조의 왕비인 정성왕후도 바로 이 대구서씨에서 나오고, 약봉의 부친이 일찍 돌아가시고, 모친이 그를 데리고 서울 현재 만리동에 가서 가세를 일으켜 그 후손들이 한양에서 많은 고위 관직을 하고 대제학 등 학문에도 높았다고 한다. 이 소호헌은 그 이후 한 90년 동안은 방치 비슷하게 되다가 이후에 다시 그 후손이 와서 거주했다고. 역시 사람은 서울로 가야 크게 되는가보다. 설명해 주는 후손 분이 하는 말이 " 나는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지만, 후손 중에는 유명한 분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이 마을에도 노인들만 주로 남아서 빈 집이 거주하는 집보다 3배는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