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도 너를 만날 수 있었네. 비무장지대. 그 철조망 속에 오래 숨죽이고 있던 너 였을텐데. 그 죽음 속에서 함께 느껴본 섬뜩함. 그 핏빛 그림자를 너도 아직 기억하고 있을텐데. 그 어둠의 그림자는 늘 철모 한 모서리에 남아 죽음의 빛으로 도사리고 있었고. 아득한 안갯속처럼 가도 가도 끝이 없던 그 길. 해마다 산새들이 찾아와 무언가 소리치고 갔어도 영 잊히지 않던 그 소리들. 핑, 하면서 돌던 철모 언저리. 쭈그러진 철모 정수리를 쓰다듬던 서늘한 바람과 햇살. 아직까지 남은 몇 마디의 절규속에 남은 너의 흔적들. 세상의 끝은 그렇게 꼬리를 보이고 말았지. 너를 보면 아득하게 잊혀진 기억도 오늘처럼 생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