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 장군과 범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포구에는 최영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 있다. 최영 장군이 몽골 목호의 난을 평정한 것을 기념한 비석이다. 목호는 몽골이 말을 키우는 목마장 경영을 위하여 고려에 파견한 목동을 말한다. 이들은 100여년간 제주도에 머물면서 말을 키웠다. 제주도는 말을 키우기에 적절한 자연조건을 가졌기 때문이다.
범섬은 제주시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 섬이다. 큰 섬과 새끼 섬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멀리서 보면 큰 호랑이가 웅크려 앉은 형상 같아서 범섬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고려를 지배했던 원나라의 마지막 세력인 목호들이 난을 일으키자 최영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제주에 온 후 그들의 마지막 본거지로 삼았던 이 섬을 완전히 포위해 섬멸시킴으로써 몽골 지배 100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곳이다.
거슬러 올라가 원종 14년(1273년)에 여·몽 연합군은 삼별초를 토벌하고, 몽골은 탐라(제주)를 점령하였다. 이후 공민왕 23년(1374년)까지 탐라총관부를 설치, 관리를 파견하여 제주를 지배하였다. 몽골은 1275년 탐라에 절도범 100명, 1276년에는 죄인 77명을 유배시켰다. 유배자 중에는 왕족, 대신, 승려 등도 포함되었다. 당시 고려는 몽골 지배 하에 있었으므로, 목호들은 고려의 관원을 살해하기도 하고 말을 바치라는 고려의 명령을 거부하는 등 난리를 일으키기도 했다.
고려 말, 중국은 몽골인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이어졌다. 새로 중국을 장악한 명나라는 제주의 목호들에게 말 2,000필을 바치라고 하였으나, 목호들은 이를 거부하며 간선어마사 유경원과 고려 관원 목사 이용장, 만호 안방언 및 병사 300명을 살해하였다. 이에 고려 조정과 명나라에서는 최영 장군을 삼도도통사로 임명하여 제주도의 목호를 토벌하게 했다.
최영 장군의 병력은 병선 314척, 병사 2만5,605명이었다. 장군은 제주에 도착 후 병선 11척을 척후로 보내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전투를 벌였다. 목호의 수괴 석질리필사 등은 기병 3,000기로 대항하며, 이들 11척의 병사를 살해하였다.
그러나 목호들은 이어 패퇴를 거듭하며 쫓기다가 서귀포의 동·서홍동을 거쳐 법환포구 앞의 범섬으로 도주하였다. 최영 장군은 병선을 범섬에 접근시켜 이들을 토벌하려 했으나 천연 절벽의 섬에 상륙이 어려웠다. 결국, 부사 정룡이 병선 40척으로 범섬을 포위하고 공격하자 목호 수괴를 포함한 주요 인물은 바다에 투신 자결하면서 섬은 정벌되었다.
서귀포시에서 5·16도로를 따라 한라산을 넘으면 도로 양옆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이 보인다. 제주도 하면 말을 연상할 정도로 제주도는 이제 말들의 천국이 되었다.
![]() | 서정문 칼럼니스트 ㅣ 시인, 수필가 / 정치학 박사 |
연성대 겸임교수, 전 성결대 외래강사 육군 대령 전역, 한미연합사, 국방부, 주 자유중국(대만) 대사관 연락관 근무, 연대장 시인, 수필가, <우리문학> 및 <한국수필> 등단 국제펜클럽 이사, 한국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 회원 전쟁문학상, 화랑문화상, 국방부 주관 호국문예 시 당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