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귤(2017.9월호 한국수필 기고작)
7월인데도 나무에 노란 귤이 매달려있다. 지난가을에 볼 때보다는 노란색이 약간 바랜 것도 같지만. 작년에 달린 귤이 아직도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눈이 내리는 겨울을 지나는 동안에도 꿋꿋하게 나무에 매달려 보는 이로 하여금 특별한 볼거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오늘 아침 산책길에서 바닥에 절로 떨어진 하귤 한 개를 주워왔다. 서너 개가 길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 가운데 몇 개는 절로 한 쪽이 썩어가면서 개미들이 달려들어 파먹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온전하게 남은 귤 하나를 주워왔다.
여름에 먹는하여 ‘하귤’이라고 했는가. 올해 새로 매달린 파란 귤이 노랗고 큰 귤 옆에 다닥다닥 매달려서 자라고 있다. 색이 바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노란색의 큼직한 귤과 새로 매달린 진녹색의 작은 귤들이 한 가지에 매달려 있다. 새로 달린 저 파란 귤도 9월이 되면 노랗게 익어갈 것이며, 큼직한 귤들은 이제 천천히 하나씩 땅에 떨어지면서 그 생을 마감할 것이다.
지난번 수채화 선생님 댁에 갔다가 하귤을 먹어보았다. 맛은 그리 달콤하지 않았지만, 신맛 같기도 하면서 밍밍한 맛이 보통의 귤 맛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하귤은 갈증 해소, 비타민 섭취, 숙취 해소에 좋다. 효소를 담가 먹으면 그 맛도 일품이란다. 높은 나무에 매달린 하귤을 따기가 어렵다고 하여 직접 나무에 올라가서 여러 개의 하귤을 따서 드리고, 그 가운데 몇 개는 얻어왔다. 귤이 나는 철이 아니기에 그래도 먹을 만 했다. 여름철에 먹을 수 있는 귤이기에 그나마 다행인 먹거리였다. 하귤은 본래 먹는 것보다 관상용으로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서귀포 남원가는 길 도로 옆에는 하귤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길옆 귤나무에 가득 매달린 하귤이 탐스럽고 아름답게 보였다. 귤이 흔한 서귀포의 가로수로 적격인 수종이라 여겼다.
하귤은 주로 여름에 껍질을 벗기고 믹서에 갈아서 먹는다고 하는데, 그냥 까서 먹어도 맛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요즘의 하귤을 보노라면, 이 시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익어서 매달린 하귤은 노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같고, 파랗게 새로 매달린 하귤은 그들의 자식이나 손자, 손녀로 보인다. 관상용으로 가로수용으로 사진의 배경으로 사용되었던 하귤은 다른 귤들을 수확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도록 그대로 나무에 남아 묵묵히 그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귤 수확 철이 지나고 나서도 나무에 남아 무언가의 할 일을 찾아 쓸쓸하게 서 있다. 그러면서도 작은 역할이나 마를 기대하면서 겨울을 지난다. 봄이 되어 이제는 더 크게 할 일이 없을 때, 작은 볼거리를 주기 위해 꿋꿋하게 나무에 매달려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봄 귤꽃 향기와 새로 난 연한 잎들의 뒤편에서 아주 작은 역할을 한다. 새 귤꽃이 피고, 새로 매달린 귤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6월이 되어도 나무에 매달려 희미한 일을 찾고 있다.
7월이면, 힘이 없어진 하귤들은 스스로 떨어져 썩기 시작한다. 귤 한 곳이 썩어 문드러지면서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간혹 온전한 몸으로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하여 씁쓸하게 말라가는 속을 사람들에게 선사하기도 한다.
얼마 전, 서귀포의 감귤박물관에서 124년 된 제주도 최고령 하귤나무 및 그 씨앗을 파종한 100년 이상 된 하귤나무 기증식을 개최했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이 나무 두 그루는 故 김성보와 현문아 여사와 슬하 7남매가 기증하는 것으로 1894년에 갑오개혁의 주역 김홍집에게 받은 하귤 씨앗 3개 중 두 그루는 고사하고, 살아 전해지는 한그루와 그의 자식 나무라고 한다. 귤의 고장인 서귀포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여러 종류의 신품종 귤나무들이 많지만, 저렇게 오래된 귤나무를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자와 손녀가 한 세대를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과거보다 평균연령이 높아지면서 함께 사는 세상이 되었다. 한 가지에 함께 매달린 하귤나무처럼 세상은 고령의 사람들과 젊은이들이 함께 살고 있다. 오래되고 낡은 것이지만 보존할 것은 잘 지켜나가면서 새로운 것을 필요한 만큼 받아들이면 좋겠다.
어쩌면 하귤나무는 그 인간 세상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아낌없이 그 오랜 시간을 봉사하고 떠나는 지난해에 열린 하귤. 때가 되면 절로 떨어져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오늘 아침, 길에 절로 떨어진 하귤 하나를 주워 가슴에 안고 오면서 이 시대 할아버지, 할머니의 또 다른 모습을 안고 오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