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문학 -2016 여름호에 게재
엉겅퀴꽃
서정문
무리지어 피는 건
멀리 떠나온 별들이기 때문이다
강물소리가 여기서부터
가슴으로 물꼬를 내는 것도
기다린 별의 가슴과
오래 집을 떠난 이역 병정의
눈빛이 꺾여진 곳
낮이면 아우성으로 흙먼지가 날고
새벽까지 뜬 눈으로 강을 지켜야 한
어깨, 팔, 다리는 아직도 절절하다
등을 후려치는 봄 밤
홀로 또 홀로
외로움이 빛이 되어가면
비수없이 떠다니는 물 파랑들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날선 비늘이 된다
성벽을 향해 일제히 매달려야 했던
젊디 젊은 목숨들
핏덩이를 쏟아내고 강으로 잠겨간
임진강변 호로고루 적벽에 새겨진 이름들
별이 되었다 한 들
꽃이 되었다 한 들
억한 민초들의 단말마
겹겹이 따가운 그 자태
저녁 강
서정문
물이 흘러가는 것을 잘 볼 수 있는
저녁 나절 강으로 간다
반짝이는 강물에 분침처럼 피래미들이 튀어 오른다
갈대 숲 지나면 시침처럼 뾰족한 강줄기
키 작은 수양버들 너머로 환하게 시계판이 보인다
빛 날 때마다 한 뼘씩 흘러가는 강물
물의 층계는 돌기를 남기고
강은 그 높이를 가늠하며 낮은 데로 흘러간다
시간도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지
그림자는 늘 약간씩 기울어져 가고
기울기에 따라 하루가 흘러가는 거야
무엇하나 평평한 것은 이 세상에 없어
조금 높고 낮은 것이 있을 따름이지
흘러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이치가
너와 나의 생각차이 같아
언제 딱 한번 같았을 때가 있었지
낮은 곳에 정이 가는 건
나도 어깨가 낮은 때문이지
직립의 내일이 허락되었어도
늘 저만치 손 밖에 있었으니까
저녁 강이 걸러내는 하루
피래미와 강 그림자가 가리키는 시간은
생명을 일러주는 단서였어
강 그림자가 기울어져가는 시간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