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 詩, 나는 이렇게 썼다 / 2011년 [우리詩] 3월호
이 詩, 나는 이렇게 썼다
김윤하 : 붉은 줄 하나 그리고 삶의 곡조
기타에 대한 첫 기억을 떠올려본다. 통기타 세대인 나는 기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었고 물론 기타 잘 치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처음 기타를 배운 게 연합고사를 치루고 난 중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이었다. 겨울방학동안 불협화음 속에서 열심히 익혀가고 그럭저럭 몇 곡은 들어줄 만 했을 때 고등학교 입학을 했다. 얼마 배우지도 못했는데 가까이 사는 사촌동생이 빌려갔다. 몇 달씩 가지고 오질 않아 찾으러 갔더니 기타가 엉망으로 깨져 있었다. 무척 어려웠던 살림이라 돈 벌러 다니시는 어머니께서 큰맘 잡숫고 사준 선물이었다. 일상적 물건이 아닌 어머니와 나만의 슬픈 사연이 있는 특별한 선물이었고, 잘 사는 큰집이라 어린 마음에 물어달라는 말이 목까지 찼었다. 그때의 황당하고 속상했던 마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일까 치지도 않고 다시 배울 생각도 없는 기타를 열심히 끌고 이사를 다닌다.
아래 나의 졸시를 읽으니 학창시절과 연애시절이 눈앞에 그려진다. 기타를 매개로 해서 시를 썼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주제나 내용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되었다. 또한 소통의 부재로 볼 수도 있는데 이별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소통의 부재에서 오기도 하는 것이니 광의적 현대인의 소통의 부재로 볼 수도 있다. 그것이 이별이건 소통의 부재건, 크고 작은 고통의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듯이 기타가 쓰러진 것, 줄이 끊어진 것을 이별 또는 소통의 단절로 치환시켰다. 끊어진 기타 줄을 갈며 그 상처 속에서 다시 삶의 곡조를 연주하며 둥근 마음의 치유를 꿈꾸는 것이다.
한밤중, 방구석에 세워놓은 클래식 기타가
쓰러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톡, 가는 신음소리 나더니
기타줄 하나가 끊어졌다
간유리 창을 통해 들어온 여린 불빛을 받으며
끊어진 기타 줄은 저를 어쩌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다
줄 끊어진 클래식 기타를 등 돌려 세워놓았다
제풀에 쓰러져 줄 끊어진 이유를 나는 안다
나도 한때는 그리움 쪽으로 몸 많이 기운 적 있었다
슬픔이 진하면 저 기타도 줄 끊어지듯
그가 떠났을 때
그를 향한 팽팽한 붉은 마음 줄 하나가
내 속에서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바람 불지 않아도 오래도록 발걸음이 흔들렸다
한밤중, 끊어진 기타 줄을 갈아 준다
줄감개를 조이며
기타 줄의 상태를 가장 좋은 소리에 맞춘다
내 손끝이 가물가물 멜로디를 더듬거린다
그가 즐겨 부르던 노래가
둥글게 퍼지는 현의 떨림이 어둠 속에 가득하다
-「클래식 기타의 붉은 줄 하나」전문
낮에 청소를 하면서 치웠다가 다시 놨는데 기타의 중심이 잡히지 않았나보다. 모든 사물이 그렇듯 기타도 물론 중심이 잡히지 않으면 쓰러진다.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로 제대로 서 있지 않으면 쓰러지고 만다. 사랑도 한쪽이 너무 기대거나 기울어 있으면 더 깊이 사랑하고 더 많이 기울어져 있는 사람의 고통이 크고 무겁다. 끊어진 기타 줄처럼 이별의 고통이나 소통의 단절을 더욱 힘들게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무서워 마음 기울기를 적당히 하며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도 아니지만.
영국의 시인이자 언어학자인 리처즈의 심리학적 시론에 의하면 ‘시란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모순된 충동들을 해소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다’라고 하였다. 인간의 삶과 사고가 복잡해지는 현대에는 대립 혹은 모순되는 것들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한다는 점에서 리처즈의 개념과 일치시켜 본다. 사랑의 이별이랄 수도 있고 사람과의 소통의 부재 속에서 오는 단절을 좀 더 현명하게 이겨낼 수 있는 지혜와 시간이 필요하다. 이별 혹은 단절의 시대에 끊어진 기타 줄을 갈아주며 삶의 곡조를 다시 튕겨냄으로써 어둠 속에서도 기타소리가 둥글게 퍼지는 충족된 세계를 꿈꾸는 것이다. 한구석에 장식용으로 세워져 있던 기타를 통한 정서적 감응을 이별의 상상력으로 전개시켜나가며 자연스럽게 나온 시이다.
시를 쓸 때는 사물과 의식이라는 두 가지 대상에서 발상을 얻는다. 모든 시 창작에는 대상이 있다. 나는 많은 부분 경험에 의한 단상과 대상으로부터 교감하고 상상력과 은유를 통해 시상을 전개해 나가려고 한다. 그 작은 단상을 확장시켜 시적 형상화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한밤중, 방구석에 세워놓은 클래식 기타가
쓰러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톡, 가는 신음소리 나더니
기타줄 하나가 끊어졌다
시의 도입부는 원래 낮이었지만 작품의 긴장감을 위해 시간대를 한밤중으로 바꿔서 시상을 전개해 나갔다. 시공간을 떠나 시적 대상과의 교감이나 감정의 동요가 없다면 시가 태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 감정이란 것도 슬며시 와서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묵혀지던, 워즈워스가 말한 ‘강렬한 감정이 자발적으로 넘쳐나는 것’이던 세 끼 밥 먹듯 찾아오는 것이 아니어서 시 쓰기가 참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치지도 못하면서 무슨 장식품처럼 세워져 있는 기타를 가끔 정성껏 닦아준다. 어느 날 문득 청소를 하고 세워놓은 기타를 잊고 있을 때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슬며시 미끄러지듯 쓰러지는 기타. 끊어지는 줄. 그 팽팽한 기타 줄이 신음소리 내며 끊어졌을 때가 이별로 치환되었다.
나도 한때는 그리움 쪽으로 몸 많이 기운 적 있었다
슬픔이 진하면 저 기타도 줄 끊어지듯
그가 떠났을 때
그를 향한 팽팽한 붉은 마음 줄 하나가
내 속에서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바람 불지 않아도 오래도록 발걸음이 흔들렸다
사랑은 행복한 고통이라고 한다. 감각적인 실체로 느끼는 사랑, 저를 어쩌지 못한 채 한없이 기울어지는 사랑. 슬픔이 진해서 기타 줄이 끊어지듯 이별에서 오는 고통을 팽팽한 붉은 마음 줄 하나가 끊어지는 것으로 형상화했다. 그래서 바람 불지 않아도 한동안 흔들리는 마음의 발걸음으로 살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별을 했느냐는 팩트나 사실성을 떠나 화자와 대상과의 정서적 교감에서 오는 상상력의 시상을 전개해 나갔다. 이별에서 느끼는 감정의 상태, 고통의 미학을 나타내고 감정의 공감대를 형성하려했다.
전통적으로 시 창작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워즈워스가 말한 대로 ‘자발적 감정의 넘쳐남’처럼 시인이 영감에 사로잡혀 쓰는 낭만주의적 詩觀과 시인은 장인과 마찬가지로 시 작품을 갈고 다듬어야한다고 생각한 고전주의적 詩觀이다. 시를 쓰는 과정이 다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티프와 대상을 통해 상상력을 동원하고 여러 이미지를 연상하여 시상을 전개하고 퇴고하는 과정을 밟는 것이다. 두 개의 시관이 자연스럽게 결합해서 나오는 것을 희망하지만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 언급한 나의 졸시는 낭만주의적 시관에 더 가깝게 창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밤중, 끊어진 기타 줄을 갈아 준다
줄감개를 조이며
기타 줄의 상태를 가장 좋은 소리에 맞춘다
내 손끝이 가물가물 멜로디를 더듬거린다
그가 즐겨 부르던 노래가
둥글게 퍼지는 현의 떨림이 어둠 속에 가득하다
대상의 현실적 효용성을 떠나 시적 효과의 시선으로 대상화 했지만 ‘그가 즐겨 부르던 노래’는 회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가 즐겨 부르던 노래가’ ‘어둠 속에 가득하다’고 표현했지만 어둠 속에 가득한 둥근 울림은 다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이별을 극복하고 난 긍정의 미래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서정적 동일성이 화자와 기타와의 매개로 일련의 기억들을 토해내고 이별의 고통을 통해 세계 인식을 감각하는 것이다. ‘나도 한때는 그리움 쪽으로 몸 많이 기울어 있었다’의 구절처럼 시간과 공간의 이동 속에서 ‘그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더듬거린다는 것은 상처를 극복하고 그런 체험과 경험이 ‘둥글게 퍼지는 현의 떨림이’ 살아있는 존재로서 ‘어둠 속에 가득’히 채우는 긍정의 방향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
‘독백’의 양식에 속하는 서정시를 통해 화자의 이별의 고백과 고통의 미학을 보여주고 그 고통 속에서 다시 현을 가장 좋은 소리로 맞추는 과정을 통해 치유된 존재로 거듭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첫사랑과 결혼했으니 이별의 고통은 잘 모르지만 남편과 사귀는 동안에 짧은 이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이 어느 날 기타가 쓰러져 줄이 끊어졌을 때, 그 줄이 어두운 허공에서 흔들렸을 때 ‘나’와 ‘기타’는 그 시절의 감정을 소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품이 상처로만 일관한다면 화자의 개인적 고백으로 그치겠기에 대상을 통해 긍정적으로 확장시켜 보다나은 삶의 인식의 변화를 나타나게 했다. 끊어진 기타 줄을 갈아주고 줄감개를 풀고 감으며 음을 맞추는 것을 통해 또 다른 사랑을 꿈꾸는 시작이며 상처를 극복하고 얻은 치유라고 할 수 있다.
고백적이고 서정성이 짙은 시들을 남긴 문학비평가 스티븐 스펜더는 “내가 쓰고 싶은 시를 설명하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다. 그러나 막상 시를 쓰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쓴다는 것은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내적인 느낌을 심상으로 만들어 이를 체험해야한다는 말일 텐데 그런 노력이야말로 일생에 걸쳐 얼마나 큰 인내와 관찰력을 요구하고 있는가?”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쓴 시를 설명하는 것도 참으로 어렵다. 그러니 시를 쓴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알수록 쓸수록 더 어려워지는 시, 지금 다시 초발심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