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신춘문예 당선 작품 분석
1. 주제별 분석
1) 전남일보가 뽑은 송명화의 `창'은 문학적 표현, 구성, 주제 등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또한 이 작가가 함께 응모한 다른 세 작품들에서도 같은 수준의 문학성을 견지하고 있어서 그 역량을 인정받기에 충분했다는 평을 받았다.
많은 신문들이 대상의 관조를 통해 삶의 의미를 캐는 작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신춘작품들이 주로 다루는 것은 삶의 소중함이다. 작품마다 가치 있는 삶과 그에 따른 자신의 생각들이 배어있다. 개개의 작품들에 나타난 삶과 사유들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소중함의 정도가 글의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수필이란 형상과 인식들의 유기적 결합이 전제된 조화 속에서 문학적 가치를 드러내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2) 부산일보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주목받는 작품을 선정하지 못했다. 작년에는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제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친 작품 /이장/이 당선되었다. 소재의 새로움에 비해 작가의 가치관이 우리 사회의 정서와 공감되지 못했고, 표현 또한 서툴러 비문이 많았다. 한마디로 상처투성이의 영광이었다. 이번 작품도 주제 지향적 측면에서 신선함은 없었다. 모성적 그리움의 실체를 찔레꽃에 견주어 풀어내는 발상은 무난하나, 대상과 제재간의 관계성이 너무 진부해서 참신성이 없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자체는 주제로서 신선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여타 다른 작품에서도 그리움이란 많이 다루어지는 것이어서 모정에의 그리움은 흔한 주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3) 전북일보는 삶과 죽음, 인간과 과메기의 관계를 새로운 형식으로 전개한 작품에 주목했다. /과메기로구나/는 주제적 측면에서도 인간주의가 물씬 풍긴다. 대상을 보는 관조의 시선이 인생론적 주제와 만나 새로운 표현 형식으로 전개됨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받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인간과 사물 사이의 숙명적 관계를 통해 인간사의 순리를 긍정적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 영원히 풀 수 없는 인생의 과제이기도 한 삶과 꿈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작품이다.
2. 배경 공간 분석
1) 전남일보가 뽑은 송명화의 /창/은 사유가 빛나는 수필인데, 집 안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현실적 공간이다. 집 안에서도 방 안, 부엌 안이다. 집은 관점에 따라 아주 다른 상징으로 나타난다. 여성 정체성 인식에 소극적인 사람은 안식의 공간으로, 여성 정체성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에게는 억압의 공간으로 비치기도 한다. 송명화의 공간 인식은 닫혀 있음에서 열림에로 나아가는 특성을 보인다. 안에서 밖으로 다시 안으로 들어오는 공간 이동을 통해 창을 열린 공간으로 인식한다. 창의 긍정적 바라봄은 현실 세계의 바람직한 상황을 암시한다.
2) 부산일보의 경우에는 시공이 인생의 전 영역에 걸쳐 있다. 성장기에 따라 공간이 이동하는데, 회상적 공간에서 현실적 공간 그리고 다시 회상적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공간 이동으로 보면 작가가 과거 공간에 대한 그리움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년기의 공간은 도시와 대칭되는 시골이며, 주로 모래사장과 느티나무 그늘 그리고 이랑이 긴 우리 집 밭이다. 청년기의 공간은 도시이며, 이 시점에서부터 회상적 공간이 지배한다. 과거 공간에 대한 회귀를 통한 현실공간에 대한 부적응을 나타내며, 찔레꽃의 추억과 어머니의 체취가 남아 있는 그리움의 공간인 언덕배기는 회상적 공간으로서 작품의 후반부를 지배하는데, 작가 의식의 흐름을 암시하기도 한다. 장년기에 접어들면서 공간은 현실적 공간인 철로로 이동된다. 여기서부터는 철로라는 현실적 공간과 언덕배기라는 회상적 공간이 양립한다.
3) 전북신문 당선수필의 경우 여전히 주제면에서 사회 현실성을 밑받침하는 사회적 배경의 수필이다. 해안도로, 선술집이라는 특수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수필로 분류되고 있어, 역시 사회성 짙은 주제를 부각시키는 방법으로서의 수필적 배경은 그와 같은 사회적 상황에서 얻어질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해안 도로를 경계로 대상의 운명은 극과 극이다. 해안도로 밑은 바다로서 대상의 삶이 존재하고, 해안의 위쪽은 죽음이 존재하는 등 양극화를 보여준다. 선술집의 풍경은 약자와 강자가 마주하는 사회적 공간이다. 먹고 먹히는 강육강식의 사회상이 상징된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에서 인간과 과메기가 비교되고, 이로써 인간 세상의 어지러움과 인간의 어리석음이 드러나고 있다. 묘사된 세계가 인간의 보편적 삶의 조건들을 의미하고 있다. 남의 슬픔에 무관심한 인간들 속에서도 작가만은 생물에의 냉혹함을 순리로 풀어 필연적 관계로 풀어내려 한다.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나름의 이해가 공감을 얻는 데 성공하고 있다.
3. 당선작 비교 분석
신춘 수필 당선이라면 고급 내지는 본격수필이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신춘수필은 문학성과 미학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른 글이어야 한다. “바로 이거다” 하고 결정하는 데 갈등이 없어야 한다. 기성 문인과는 다른 시선한 느낌, 자신만의 새로운 문장력, 소재의 참신함, 독자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흡인력 있는 문체를 구사해야 한다. 함께 제출한 다른 작품도 완성도가 있어야 하며 평범한 소재라도 신선한 감각이 번득여야 한다. 지성과 감성이 동시에 빛나는 글이어야 하고, 단 한 줄의 달고 차디찬 샘물 같은 글로서 1년을 기다려온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주어야 한다. 당선수필은 어떤 경우든 이 시점의 한계 아래 놓인다.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미학성과 문학이라는 측면에서 문학성을, 글이라는 측면에서 문법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그 수필은 당선수필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신춘문예 당선 수필의 경우에는 문학 본질의 차원에서 형상과 인식의 복합체인가를 고려해야 하며, 수필문학의 특성상 주제가 간접화되어 있는가, 미적 구조와 인식구조의 차원에서 쾌락성과 교훈성을 주고 있는가, 지성, 정서, 상상의 측면이 고루 충족되고 있는가, 언어예술이라는 차원에서 참신성, 함축성, 형상성, 탄력성의 네 가지 속성을 작품이 가지고 있는가, 작품의 가치 평가에서 수필이 가지는 6가지 구성 성분, 구성과 형식적 측면 등 일곱 분야 차원에서 다양하게 그 가치가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1) 삶에 대한 통찰력, 2) 사물을 보는 안목, 3) 투명하면서도 깊은 울림, 4) 풍부하면서도 절제된 감성, 5) 평이하지만 신선한 문체, 6) 개성 있는 시각, 7) 미의식 등이 녹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격조 있는 사유가 있어야 한다.
위의 측면에서 당선작의 가치를 따져 보면 대체적으로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신문사별로 보면 전남일보, 전북신문 당선 수필이 대체적으로 합격점을 능가하는 문학성을 보이고 있다면, 부산일보는 좀 부족하다는 점이다. 세 작품 모두 언어 구사 면에서는 남다른 감수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문학성의 주요 변수로 작용하는 구성 면에서 두 작품이 무난했다면, 부산일보는 너무 단순했다고 볼 수 있다. 부산일보나 전남일보 당선작은 주제지향성 측면에서 너무 평범했다면, 전북신문은 이 두 신문보다 주제 면에서 참신한다고 할 수 있겠다. 언어예술로서 가져야 하는 문법성 측면에서는 전남일보 /창/이 단연 낫다.
전남일보 /창/은 전체가 탄탄한 문장력으로 뒷받침되고 있는 글이다. 심사위원의 성향에 따라 또는 독자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압축적인 단문을 단락의 첫 문장으로 배치해서 강한 인상을 풍긴 구성적인 기교나 문단의 중심 사상을 정확하게 뽑아서 주제의식을 구체화하는 전개 방식이 깔끔하고, 그것을 연결시키는 수법이 수준급이다. 주제의식의 의미화를 위해 고시조를 인용 처리한 것도 매우 적절했고, 실제로 작품성을 드높이는 데 이것이 기여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글의 분위기가 단조롭고 딱딱한 느낌을 준다는 점은 아쉽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나 반전이나 역행성의 묘미를 불러올 전환 구조나 파격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재미란 읽는 즐거움과 보람이다. 주제의식이 압축적으로 드러난 단문을 읽어나가는 즐거움에 더하여지는 보람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위트 넘치는 재치로 글 읽는 마음을 시종 넉넉하게 하거나, 지성과 감성에 빛나는 사유가 긴장감을 주면서 독자의 시선을 흡입하는 문장에 힘과 개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밖이 보이는 창의 특성을 활용해 자연과 이웃을 불러들인다고 하는 건 주제의식의 구체화를 위한 좋은 전제다. 이미 서두에서 작가는 자폐 시대 숨어야 할 필요를 느낄 때면 삶의 무게를 경험하는 것으로써 전제와 결론의 인과성을 확보한다. 도시 생활 속에서 보통의 주부라면 블라인드를 내리거나 창을 닫으면서 편안한 휴식의 시간을 확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서 작가의 반응은 정반대다. 창을 열어 보면, 무엇 하나 온전할 수 없는 도시 환경인데 작가는 세계와의 소통을 꿈꾼다. 이것은 남다른 관점이요, 이 작품을 작품이게 하는 단초다. 이 단초를 기초로 작가는 닫힘과 열림을 반복하는 구조로 나가면서, 안과 밖의 대비, 벽과 창의 대비, 마음이 가난한 사람과 부자들의 대비, 과거와 현대의 대비 구도를 통해 주제 구체화를 완벽하게 구축한다. 그리고 작가는 닫힘과 열림의 모순에서-열림에의 의지-사고의 전환-벗어남의 시도-열림으로의 실천을 통해 상승구조를 구축한다. 닫힌 창 안은 자폐의 공간을 의미한다. 그런 공간을 탈출하고 보니 다른 집들의 모습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일체유심조의 철학이 꽃피운 것이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바로 이거다”라고 하는 데 갈등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소재나 주제의식이 지극히 평범하다는 것이다. 소재에 대한 통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의미나 해석이 /과메기로구나/보다는 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당선 작품으로 선정되었을까. 무엇보다도 심사위원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은 중심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그녀의 탄탄한 문장력이었다. 다른 하나는 질서 정연한 구성의 체계성과 주제 전개의 논리성이다. 그 다음 이 수필의 강점은 주제의식의 상상화가 빛났다는 데 있다. 이는 “창을 닦는다” “닫혀 있어도 열려 있는 창” 등의 문장과 문구로 함축되고 암시된다. “창을 퉁겨본다”는 문장은 실감을 주면서 리얼리티를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 외에도 송명화의 작품은 앞에서 제시한 일곱 가지의 관점 중 어느 하나 소홀히 한 것이 없다. 굳이 흠을 잡는다면 이 작품 역시 인식의 측면에서는 발상이 평범을 못 벗어났다는 것이다. 발단과 전개 과정에서 소주제들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드러나 정작 주제의 의미화는 강한 인상을 받지 못하게 된 것도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다른 두 작품에 비해 글의 구성에서부터 전개 과정에 이르기까지 질서 정연하고도 인과적인 연결성이 가장 나았다. 세 번째 단락의 첫 문장은 그 단락의 마지막에 두었다면 더 좋을 뻔했다. 한마디로 본격수필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문장력, 구성력, 주제의식의 형상화 능력이 탁월한 데서 평론가이자 국어 전공 교수의 눈에 들 수밖에 없었다.
부산일보의 /찔레꽃/은 작년에 이은 올해의 당선작도 많은 수필인들의 기대에 크게 부응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추억을 아름답게 잘 회상하거나 사물의 감상을 잘 묘사하기만 해서 좋은 수필이 되는 건 아니다. 자신만의 철학적 사고와 깊이 있는 생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독창성도 없고 문제 제기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 수필이 당선된 것은 의외다. 이 수필의 장점은 간절함으로 씌어졌다는 데서 오는 감동뿐이다. 이는 자칫 감상으로 흐를 위험이 큰 소재다. 아니나 다를까 감상으로 흘렀고 감정 절제가 안 된 문장들이 더러 보인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점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서 머물지 않고 어머니에 대한 보다 폭넓은 연민과 이해로 나아가야 했다. '습니다'스타일의 과거 회고형의 종결어미와 전통 모성 원리로 전개되는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에 기대어 값싼 공감을 요구하고 있지만, 주제의식이 과거를 감싸는 복고적 지향성을 드러냄으로써 역시 참신성이 떨어지는 글이다. 찔레꽃 회상을 통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유년 시절의 추억을 수놓던 모래사장의 회고를 통해 가난한 시절의 순수를 퍼 올리고 있지만, 평면적인 구도 역시 구성의 묘미를 느끼게 하지 못하고, 읽는 보람이 될 카타르시스도 없다. 장면 장면의 스토리 전개가 너무 익숙한 경험 세계의 범주 안에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런 평범한 세트 설정은 가치 있는 체험일 수가 없다.
신춘문예 당선작품이라면 무엇보다도 작가의 의식이나 작품의 주제가 참신해야 하며, 문제의식이 표출되어야 한다. 작품의 출발선이 인식에 닿아 있어야 한다. 문단 전개의 기본 원리는 최소한 지켜져야 한다. 찔레와 모정의 그리움은 상관성이 매우 깊다. 그러나 그 둘의 관계는 진부하다. 신춘 작품이라면 구성이나 표현 면에 있어서도 한 점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지만 이 작품의 구성은 시공의 순서를 그대로 따르는 단순 구성을 취하고 있고, 표현은 현대적이지 못하다. 복합적 통일성이란 미학의 관점에서 구성에 대해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고, 단락 전개도 비문법적인 데가 많다. 너무 안이하게 조직을 꾀했던 것이다. 주제가 당연한 것이고 보니 읽는 보람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종결어미가 '습니다'체라서 복합적 통일미나 무질서 속의 질서, 탄력성이 다른 작품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 문체의 단순, 건조함은 읽는 데 지루함을 준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문학의 주요 속성인 독창성이 없고, 주제도, 제재를 보는 관점도 표현도 평범한 작가의 선을 못 벗어나고 있다. 메이저 신문이라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이 투고되었을 것 같은데, 한마디로 좋은 작품들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르겠다.
‘목을 간질이는 햇살’이란 표현은 전반, 중반, 두 번이나 나왔으며, 전반부와는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찔레꽃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주제 지향성이 희미해진다는 것은 결정적인 문제다. 전체적으로 “나‘라는 말이 30번을 넘게 나오고, ”그“라는 말도 10번 이상이 나온다. 감정이 절제되지 못한 탓이다. 찔레꽃에 담긴 사연과 어머니에의 그리움을 접목시키는 발상은 지극히 평범한 차원이다. 수필은 인식의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찔레꽃과 어머니의 관계성과 인과성마저도 작가는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 ’인간이란 누구나 과거를 그리워하는 존재다‘라는 말로 뭉개버린다. 신춘 작품은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주제 중심의 문학인 수필에서 치명적인 약점은 주제의식이 희박한 것이다. 하나의 이미지를 표상화해서 그것에다 주제를 담아야 하는 데도 이 작가는 찔레꽃에 어머니의 기억과 유년의 추억까지 함께 담아내려 하다 보니, 주제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인지 고향에 대한 추억인지 어느 하나로 집약되지 않는다.
잘된 글은 결속성의 원리에 지배되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여러 가지 문학성을 주는 요인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포크스가 분산되면서 제일 중요한 주제 결속성이 깨어졌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럴 때 고급독자는 가장 혼란을 겪는다. 그러면 이 글은 사람은 누구나 늙어 가면 추억과도 관계없이 과거적 그리움에 젖는 존재라는 것을 주제화한 글인가 하고 반문하게 된다. 그리고 탄력성의 측면에서 문제 제기를 해보면, 앞서 지적했지만 종결어미가 너무 단순하다는 점이다. 새로움은 문체에서, 표현에서, 소재를 보는 눈에서 다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란 주제와 ‘습니다’체가 어울린다고 보겠지만, ‘습니다’는 수필 문체와 어울리지도 않고, 시대적 공간에서도 어울리지 않는 문체임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제재나 주제의식의 형상화가 현대적 감각으로 뒷받침된 본격수필이 당선작으로 뽑힐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