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방

오래된 대패

지도에도 없는 길 2012. 1. 11. 23:36

 

 

 

 

 

 

 

 

 

오래된 대패

 

 

아버지가 생전에 사용하시던

낡은 나무 연장통 구석에서 오래 기다린

날 한 곳에 녹이 슨 대패를 꺼낸다

 

나무 망치로 대패날의 등을 툭툭 치면

물러난 날이 조금씩 앞으로 나선다

우둘투둘한 미송 흰 등에서

수직으로

대패가 자리를 잡는다

왼손은 대패 머리를 잡고

오른손을 대패 허리에 감으면

대패는 어깨를 들썩이면서 길을 잡는다

어허, 아직 몇 번을 더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느니

덜 깍인 자리를 되짚어가며 중얼거린다

자꾸 매끈해지는 등짝을 지나

햇살이 미끄러져 내린다

녹이 슨 오래된 대패의 등짝에 힘이 실리고

평평하게 더 편편하게

미송의 길을 닦는다

그 닦여진 길로

바람이 먼저 발을 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