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방

함께가는 길

지도에도 없는 길 2012. 1. 4. 08:15

 

 

 

 

함께가는 길

서 정문(시인)


저 푸른 화랑연병장의 잔디 빛처럼
늘 푸르고 싱싱하게 살아온 참빛 들아
가을빛이 저리 따스하구나
서로서로 눈빛 마주치며 손을 잡아 보렴
그리고 눈을 감아보렴

기초군사훈련때 목청껏 외치던 구령소리도 들리고
분열 휴식시간에 긴 꼬리를 남기고 기나가던
경춘선 열차의 기적소리도 귓가에 남아
92고지 작은 숲길
넉넉한 가슴으로 달려오던 뜀걸음 소리까지

봄이면 범무천 자주빛 등꽃
해살해살 물 빛 풀어주던 등나무 꽃 그늘
라일락 꽃 향기 온 몸에 휘감기던 학과출장 길
개나리꽃 노랗게 핀 국게게양대 뒷편
벚꽃 진 자리마다 붉게 익어가던 버찌들
아, 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함께 떠난 하훈의 추억
태릉 배밭으로
밤비내린 길을 걸어걸어 돌아오던 밤
원주의 아픈 추억까지 같이 나누었던 날
동복유격장의 도피 및 탈출
공수훈련의 점프는 꽃구름처럼 창공에 남아
그립고 아쉬웠던 훈련의 날은 그헐게 저물어 갔네

그 해 겨울근처 10월 26일
화랑제의 마지막 새벽은
갑작스런 충격으로 시간을 멈추게 하였고
광주 상무대에서의 5.18
그 아픈 기억 속에서 군 생활이 시작되었지
전국 방방곡곡 이름없는 산하 그 골짜기
일찍 먼 길 떠난 몇의 동기들
지금도 그 붉은 뺨 초롱하던 눈빛
그날처럼 가슴에 남아 있구려

시간은 바람같아
희끗한 머릿결처럼 은빛 추억들이 되었구려

잡은 손을 서로 흔들어보면
살가왔던 그대의 기쁨도 느껴지고
만나고 싶었던 친구의 아픔도 전해지고
살아온 30년보다
살아갈 30년 뒤의 시간동안
푸근한 모습으로 넉넉한 가슴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정겨운 사람이 되어준다면
서로 어깨동무하고 함께 걸어간다면
서로가 서로의 바람벽이 되고
서로가 서로의 온기가 되고
가슴 데워 나아가는 내일이 되리
작은 등불 하나까지 함께 보듬어
그 대 서 있는 그 자리
참빛으로 오늘을 밝히고
참빛으로 내일을 아름답게 밝혀주소서
서로의 등불이 되는
그런 참빛이 되게 하소서
그런 참빛으로 영원하게 하소서


시작노트

아이가 태어나서 삼십년이면 시집, 장가를 가는 나이 일게다. 지금이야 흔히들 늦게 결혼을 한다지만 대략 그 정도의 시간이 바로 삼십년인 것이다. 그러니 삼십은 스스로 자신을 깨닫는 시간이요, 책임을 지는 나이임이 틀림없다. 빛나는 소위로 임관한지 삼십년이 지났다.소위 계급장을 단 이후 전후방 각지에서, 혹은 미리 사회로 나가서 또 다른 봉사의 길에서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세월이 어느  덧 이만큼 흘렀다.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아릿한 추억은 뚜렷하게 남아 있게 되나보다.이제까지 모두 푸른 마음으로 아름답게 살아왔구나 싶다. 직접 만나보니 더욱 간절하게 그런 생각이 든다. 더러는 미리 저 세상으로 가서 편안한 영면을 취하고 있겠지만,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 또 다른 삼십년은 되돌아 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주변을 살피는 시간이 되기도 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배려의 여유가 배어 나기를 기대해 본다. 함께가는 길동무로 만나 이제는 서로 가슴 터 놓고 걸어가고 싶다.시간의 발자국이 아름답게 남겨지는 삶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육사신보에  실었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