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일교, 다시 승일교에서
승일교, 다시 승일교에서
철원의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교량중에서 가장 운치가 있는 다리이다
고석정에서 문혜리로 가는 길
그 승일교는 한탄강을 건너는 길목에 있다
6.25전에 건설이 되다가 마무리를 못하고
6.25 이후에 다시 마무리를 한 다리
북한이 1948년 공사를 시작했다가 6.25 한국전쟁으로 중단한 뒤 전후에 우리 정부가 완공(1958)하였다.
1999년 11월 8일, 바로 옆에 한탄대교가 준공되어 현재는 차량통행이 불가하고 사람들은 통행이 가능하다.
지금을 그 한탄대교 옆에 다시 또 다른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바로 옆의 공터를 군에서 이전받으면서 그 지역을 개발하며 이 일대의
발전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동송에서 그 다리를 지나기 전에 있는 고석정에는 임꺽정의 전설이 묻어 있다
승일교와 고석정은 거리상으로 500미터 이내 정도가 아닐까
넓은 공터를 두고 서로 인접하여 있다.
승일교보다 더 역사가 깃든 곳은 바로 고석정이다.
때는 조선 명조 시절, 양반들의 횡포로 일반 양민들의 삶은 궁핍하고 어려운 시기였다
이때 등장한 임꺽정(林巨正), 그는 6척 장신의 육중한 거구에 기골이 크고 담력이 타고 났다.
출생지는 경기도 양주, 백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하여 소원은 "고깃국에 쌀밥을 먹는 것" 이었다.
굶주림에 어린시절 동네 부랑배들과 어울려 좀 도둑질을 하고
나중에는 고관대작의 부잣집을 털었다.
이후 철원의 고석정 지역으로 숨어들어 지역의 천민들을 규합하고 군소 산적 무리를 소탕하였다
고석정 건너편(지금의 한탄강 골프장 지역이나 승일교 건너편이 아닌가 한다)에 석성을 쌓고
두령이 된다.
철원은 예로부터 함경도 진상품을 싣고 조정인 한양으로 가는 길목
그 길목에서 그는 진상품을 빼앗고 고관들의 집을 털어
그 물품을 지방 아전들에게 줌으로써 그들로부터 체포 정보를 사전에 빼내어 도망을 다녔다
일설에는 관군들이 고석정에 은신한 그를 잡으러 오면 '꺽지'로 변하여
한탄강 깊은 물속으로 숨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약탈을 가지고 이미 '의적'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이후 임꺽정은 관군도 죽이고, 어떤때는 마을도 습격하여 양민을 죽이기도 하였다
임꺽정은 승승장구로 한후 세력을 늘려 서울까지 진격하여 관군과 접전을 벌였고
1급 참모가 생포되면서 작전계획과 기밀이 누설되어
명종 17년(1562)에 생포되어 목이 베어진다
그가 후대에도 그리 많은 지탄의 대상이 아닌것은
"재상이 멋대로 욕심을 채우고 수령이 백성의 고혈을 짜내니 잠시라도 목숨을 잇고자 도둑이 되었다
이 모두가 조정의 잘못이지 그들이 죄가 아니다" 라고 실록이 기록하고 있으니
어느 편의 잘잘못인지는 스스로가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역사는 강자편에 서기도 하지만
핍박받고 어려움에 처한 민중의 편에 서기도 하니
임꺽정이 지금까지도 그의 악행보다 당시 부패한 조정과 시대상을 보았을때
양반이나 당시 지식인들 스스로가 반성하는 의미로 그렇게 평가한 것이 아닌가 보여지기도 한다
그 옆에는 온천이 있다 철원일대를 둘러보고
특히 겨울날, 안개가 피어오르는 온천물에 몸을 담그면
온 몸의 피로가 절로 풀어지는듯 하다